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수예술은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로 경제적인 면에서 항상 홀로서기를 해왔다. 경제적 부가가치가 적기 때문에 투자자를 구하는데 항상 어려움을 겪어왔고 새로운 양식의 공연예술이나 상업성이 높은 매체가 생겨나면 그나마 도움을 주었던 투자자들도 곧바로 방향을 선회하곤 했다. 19세기에 가장 대중적이며 흥행성을 갖춘 멜로드라마(Melodrama)도 19세기 말에 영화가 생겨나면서 결국 쇠퇴의 길을 걸었고 1930년대는 경제공황으로 많은 순수예술 종사자들이 할리우드로 발길을 돌렸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브로드웨이는 몇몇 작곡가와 제작자들의 살신성인으로 그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지만 주요 영화사들은 항상 발 빠른 행보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부를 축적해 갔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번성기를 누렸다. 제작, 배급, 마케팅에서부터 상영에 이르기까지 영화산업의 핵심 분야를 장악했으며 한편으로는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스튜디오 시스템도 1947년 이후부터는 일반화된 텔레비전의 영향으로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뮤지컬은 질적인 면에서나 작품 수에서 하양곡선을 걷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화의 마케팅도 변했다. 스튜디오의 변화와 관객 수의 급감, 그리고 관객들의 여가활용의 트렌드가 변하면서 할리우드 영화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요즘은 일반화되어 있지만 한 건물에 여러 개의 영화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이때 생겨나기 시작했고 극장들은 야외나 쇼핑몰 근처로 자리를 이동했으며 자동차 극장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TV의 급속한 대중화와 함께 TV가 전 세계로 급속하게 퍼져나갈 때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몇몇 회사들이 1930년대부터 라디오 및 TV방송국을 사들이고 있었다. 급부상하고 있는 TV를 방치하고 있다가는 영화사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견한 영화사들이 많은 돈을 들여 TV 시장에 진출을 꾀했다. 그렇지만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가 영화사들이 TV 매체마저 장악하려하는 의도를 간파하고 제동을 걸었다. 이에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소송을 벌여 결국 1950년부터 TV시장에 진출했으며 컬럼비아 영화사도 다음해에 뒤를 따랐고 대부분의 영화사들도 TV 시장에 올인 했다. 이에 많은 영화 기술자들과 배우들도 TV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 TV를 소유한 영화사들은 자체적으로 TV용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극장에 자주 가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해 할리우드 영화를 매주 TV를 통해서 내보낼 수 있었다. 이러한 TV매체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수익성이 클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 영화사들은 더욱 TV의 기술발전과 작품의 질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해서 1950년대 이후부터 영화산업은 TV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비싼 자체제작을 자제하고 영화프로젝트별로 독립제작자들을 기용했고 남는 인력을 배급 쪽으로 집중했다. 즉 소형제작자들이 작품을 만들어 대형스튜디오 영화사들에게 완제품을 파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대형스튜디오들이 제작에서 손을 떼고 영화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10대와 20대를 겨냥한 공상과학물이나 로큰롤 영화가 봇물을 이루었다. 이전과는 달리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나 감상적 줄거리는 기피했고 폭력과 섹스를 다룬 작품들이 성행했으며 미국 내의 좁은 시장을 탈피하여 세계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화사들의 영화배급 집중은 TV를 통해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영화를 자주보지 못했던 관객들을 위해 오히려 TV를 통한 영화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는 시대적인 요구와 TV의 발전으로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는데 유명가수들이나 배우들의 노래를 TV를 통해 쉽게 듣고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비싼 영화티켓을 사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뮤지컬 관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또한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하다보니 늘어가는 제작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런 와중에서도 1940년대 후반 이후에 진 켈리(Gene Kelly), 빈센트 미넬리(Vincente Minnelli), 조지 시드니(George Sidney), 스탠리 도넨(Stanley Donen), 찰스 월터즈(Charles Walters) 등 아서 프리드 휘하의 감독들이 독특한 스타일과 연출로 할리우드 뮤지컬 역사상 최고의 명작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파리의 아메리카인(American In Paris, 1951)>,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 1952)> 등 최고의 명작들을 시작으로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Oscar Hammerstein II)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영화버전인 <오클라호마(Oklahoma, 1955)>, <왕과 나(King & I, 1956)>, <남태평양(South Pacific, 1958)> 등과 <지지(GI GI, 1958)> 등이 할리우드 뮤지컬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또한 19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의 특징으로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자신의 노래들을 영화를 통해 먼저 발표하기도 했다.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 1956)>를 포함한 엘비스의 뮤지컬 영화들이 1960년대 까지 큰 인기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