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10-30 오후 07:36:5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문화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232

악동(惡童)의 어린시절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4월 22일

포천의 신읍동을 옛날에는 ‘장거리’라고 하였으며 ‘새장터’라고 하였다. 왕방산 기슭 호병동은 ‘호병굴’이라고 하였는데 병 같이 쏙 들어간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중국의 옛 말에 ‘서원동류(西源東流)’라는 물은 똥물도 좋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서쪽에서 발원(發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매우 질(質)이 좋고 맑으며 아무리 오물 같아도 그 물의 성분이 양질(良質)이란 말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다리 실개천’이나 ‘호병골 냇물’이 서원동류(西源東流)에 해당되는 매우 좋은 냇물이었다.
장거리 아이들은 물론 호병골 아이들의 1940년대 생활은 매우 단조로우면서도 악동(惡童)놀이패가 많았다. 호병골 냇가에 둑방에다 철망으로 돌을 담아 방축을 만들어 놓으면 아이들이 돌이나 도끼를 가지고 나타나 둑방 쇠철망의 철사를 절단하여 가지고 썰매를 만들기도 했으며 외발 스케이트를 만들어 얼음지치기를 하였다.
면사무소나 군청에서 둑방 방축공사를 해놓으면 아이들은 둑방 쇠철망 철사를 잘라 스케이트나 썰매를 만드는 일을 매년 계속하였다. 그래서 여름 장마철이면 호병골 개울둑이 파손되어 새장터까지 큰 물이 흘러 집이 떠 내려갈 뻔한 일이 여러 해 계속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포천초등학교 교사 뒷산은 안동김씨 종산(宗山)인데 새장터, 장거리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나무를 꺾어 놀기도 하고 칡뿌리도 캐어 먹는 바람에 매년 수천주의 잣나무를 식목하여도 붉은 대머리산을 면키 어려웠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벌거숭이 포천초등학교 뒷산에서 무너진 토사(土砂)가 호병골 개울과 한내개울로 흘러 들어 신읍(새장터, 장거리) 은 진흙탕이 되고 물난리를 겪는 고통을 면치 못하였다.
봄에는 읍내 사람들이 학교 뒷산에 올라가 모두 식목을 하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올라가 나무를 꺾고 놀아 모래사태를 겪고 호병골 개울 둑방이 터지는 홍수 난리를 겪는 수난이 되풀이 되었다.
그후, 이종근 면장님이 6군단장 백인협 장군의 대민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호병골 냇가 둑방공사도 튼튼히 하고 목욕탕(공중-면사무소 직영)도 만들었으나 그 효과는 어떠했는지 검증할 길이 없다.
요즈음 1940년대의 어린 시절을 내 고향 신읍에서 살던 70대의 노년들이 모이면 어린 시절 호병골 둑방 쇠철망을 절단하여 썰매를 만들어 제방을 파손케한 이야기와 포천초등학교 뒷산의 식목한 나무를 꺾고 칡뿌리를 캐내어 사태가 나고 큰 물난리를 겪었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어린시절의 추억은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시절에는 무심코 했던 일들이 원인이 되어 마을의 재앙으로 이어졌던 이야기는 오랫동안 남아 늙은 노동(老童)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고향 포천의 호병골 개울이나 한내개울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면 어떨까? 서울의 청계천 같이 말이다.(괜한 소리.....)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4월 22일
- Copyrights ⓒ포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이름 비밀번호
개일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겨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PBS 포천방송 TV
경기도
생활상식
가장 많이 본 뉴스
정보 커뮤니티
상호: 포천신문 / 주소: 경기 포천시 해룡로 130-38 (동교동)
발행인·편집인 : 김현영, 편집인 강신옥 / mail: ipcs21@hanmail.net / Tel: 031-542-1506~7 / Fax : 031-542-111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 아50080 / 등록일 : 2009년 6월 22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현영
Copyright ⓒ 포천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