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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 98

베푼 자에게 보답이 있다
정병갑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4월 22일

한국한시협회 포천지회장  리 효 종
유희춘이 젊었을 때 성균관 관원으로 있었는데, 그때 김인후(金麟厚)는 성균관 유생이었다. 훗날 김인후는 과거에 급제한 후 홍문관 박사가 되었는데 비록 높은 요직에 오르지는 못하였으나 이황. 기대승 등과 함께 대학자로 인정받았다.
김인후가 성균관 유생이 되었을 때 전국에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그때 그도 전염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였다. 하지만 다른 유생들은 모두 겁을 먹고 그를 돌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희춘은 그의 사람됨을 애석히 여겨 자기 집에  업어다놓고 밤낮으로 돌보아 마침내 병을 낫게 하였다.
김인후는 이를 늘 감사히 여겼다. 훗날 유희춘은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종성(鍾城)으로 유배되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하나뿐인 자식이 매우 어리석었다.
 유희춘이 자식이 어리석어 장차 살아갈 방도를 걱정하자 김인후가 말하였다.
“그대는 내가 죽을병에 걸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피했을 때 나를 집에 데려가 간호하여 살려주었소. 이제 그 은혜를 갚을 때가 온 것 같구려. 자식은 걱정하지 마시오. 마침 내게 딸이 있으니 사위로 맞아 살아갈 방도를 찾아보겠소.”
김인후가 유희춘의 아들을 사위로 맞으려 하자 온 집안이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이를 모두 물리치고 끝내 사위로 받아들여 혼례를 치렀다.
성품이 활달한 유희춘은 가산을 돌보지 않았고, 옷과 버선이 때묻고 해져도 부인이 새것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꾸밀 줄을 몰랐다. 방에는 책을 펴놓은 책상 외에는 비록 먼지와 때가 끼어 있어도 쓸고 닦지 않았다.


유희춘(柳希春)
1513년(중종 8) ~ 1577년(선조 10).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이다.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수찬. 정언 등을 지냈다. 1546년(명종 1) 을사사화 때 김광준(金光準). 임백령(林百齡) 등이 윤원형 일파에 가담하라고 요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곧 함경도 종성에 안치되었다. 그곳에서 19년간을 보내면서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1565년 충청도 은진으로 옮겼다가 선조가 즉위하자 석방되었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부제학·예조참판·공조참판·이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경전에 널리 통하였고, 제자(諸子)와 역사에도 능하였다. 선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에게 배웠으므로 항상 그를 스승으로 여겼다.
저서로 『미암일기』 등 여러 권이 있으며,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정병갑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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