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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비정신 95

청탁하지 않았더라면 벼슬을 할 수도 있었는데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3월 20일

이후백은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고 큰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그는 1535년(중종 30) 향시(鄕試)에서 장원하고 곧 상경하여 여러 선비를 찾아다니며 학문을 익혔다.
그가 벼슬길에 오르기 전이었다. 하루는 관찰사 행렬이 지나가는데 자칫 행렬 안으로 뛰어들었다가 관아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이후백은 관아에 끌려가자 자못 선비 흉내를 냈다.
“저는 공부하는 유생입니다. 실수로 행차를 범했으니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관찰사가 이후백을 훑어보더니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공부하는 유생이라니 내가 운(韻)을 불러주면 능히 시를 지을 수 있겠는가?”
“미천한 재주이나 한번 지어 보겠습니다.”
이윽고 관찰사가 운을 불러주자 이후백이 단번에 시를 지었다.
끊어진 다리에 해 비끼니 동인지 서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얼굴을 때리는 모래먼지 북풍에 쓸려가도다.
   자칫 관찰사의 행차를 범했으나 후회하지 않으니
   옛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도 이로 말미암아
   대문장가 한유(韓愈)를 알게 되었네.
관찰사는 이 시를 읽고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서로 친하게 지냈다.
이후백이 이조판서로 있을 때 인사청탁을 받지 않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비록 친구라 할지라도 자주 찾아가면 싫어하였다.
 하루는 친척이 찾아와 은근히 청탁하였다. 그러자 이후백은 얼굴빛을 고치며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종이 한 장을 보여주었다. 장차 벼슬할 사람들의 이름이었는데, 마침 그 친척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내가 자네 이름을 기록하여 장차 벼슬에 천거하려 했더니 지금 자네가 나에게 청탁을 하니, 만일 자네가 관직에 오르면 도리가 아니네. 안됐구나. 자네가 만일 청탁하지 않았더라면 벼슬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 친척은 부끄러워하며 돌아갔다.
이후백은 하나의 벼슬을 시키더라도 꼭 그 사람에 대한 것들을 모두 탐문한 후 뽑았다. 만일 합당하지 못한 사람을 썼을 때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내가 국사를 그르쳤다!”
 이후백(李後白)
 1520년(중종 15) ~ 1578년(선조 11).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계진(季眞) 호는 청련(靑蓮)이다.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주서를 거쳐 1558년 승문원 박사가 되었다. 그후 여러 벼슬을 거쳐 선조 때 대사간과 도승지를 지냈다.
 1571년 정시문과에 장원한 후 1574년 형조판서가 되고 다음해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후 이조판서를 지내고 곧 호조판서가 되었는데 휴가를 얻어 함안에 성묘를 갔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청백리로 뽑혔으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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