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의 최초의 천주교 세례교인이 바로 요한 이벽 이라면 여러분은 놀랄 것이다. 요한 이벽(영조30년-1754년~ 정조 10면-1786년)은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경주이고 본명은 덕조 호는 광암, 만천이다. 요한은 님의 세례명이다. 성호 이익의 문인으로 일찍이 주자학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사상과 학문을 모색하던 중 청나라로부터 유입된 서양 학문을 탐독했으며 중국의 실학자 서광계, 이지초 등이 저술한 방대한 내용의 학문서를 연구했다. 성서를 연구해 일가를 이룰만치 기독교와 천주교의 학문적 연구가 깊게 되었다. 정조3년(1779년) 권철신 형제, 정약용 형제 등 기호지방의 남인들과 경기도 광주의 주어사에서 실학적인 인식의 깊이를 쌓고 새로운 윤리관을 모색할 목적으로 강학회를 열었다. 천주교 교리를 탐구하고 신앙을 실천하여 천주공경가를 지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세례를 받고 포교를 시작한 이승훈에게도 천주교리를 전해 주었다. 정종 8년 (1784년) 이승훈이 서장관으로 청국에 갈 때 카톨릭 영세를 받고 올 것을 부탁하자 이승훈이 돌아올 때 성서와 성수를 갖고 귀국하자 이벽은 그에게서 영세를 받고 세례명을 요한이라 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천주교 선교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하였다. 정약용 형제, 권철신 형제, 김범우 형제를 천주교에 입교시키고 선교활동에 정진하였다. 이때 카톨릭에 대한 아버지의 결사적인 반대로 심한 갈등을 겪던 중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이 을사추조적발사선에 연루되어 첫 순교자로 순교하였다. 이벽은 당시 사회적, 정치적 풍토와 병폐를 직관하고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학문정신으로 사상과 학문 실천운동으로 일관하며 평생을 살았다. 또한 한국 천주교 사상의 최초 연구자였으며 학자이자 실천운동가였다는 점에서 천주교 사상 길이 빛나는 주춧돌 같은 성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순교 후, 화현리 산 289번지에 안장되었다. 195년만에 순교후 묘지를 찾아 (1979년) 광주 퇴촌면 천지암 천주교 묘지에 이장하였다고 한다. 변기웅 신부의 노력이 컸다 한다. 유작으로는 만천유고가 남아있어 님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