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개개인이 개성과 특성을 지닌 유일한 자아를 섭취하며 각자의 일터에서 특별한 생활을 함께 영위한다. 사람은 오관(五官)이 낳는 오감(五感)의 소리를 내며 살아간다. 그 소리(말)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두 사람이 만나면 듀엣이요, 세 사람이 같이 하면 트리오(삼중주)며, 넷이서 어울리는 사물놀이가 또 그것이며, 여럿이 함께하면 관현악단(오케스트라)이다. 사람이 악기라는 이유 중에 그 하나가, 소리(언어)를 사용하여 그 수단으로 생각을 옮겨 창작하여 표현하는 능력의 소유자이기에 그렇다. 곧 그 사람의 소리(말)가 인품이요, 성품이기에 그러하다. 소리(말)중에는 입으로 하는 소리(말)와, ‘눈으로 말해요’ 하듯이 사람의 몸짓이 소리(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은 사람이 살아가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말로써 얻기도 하지만 말로써 잃는 것도 많다. 그것은 말이 한낱 소리가 아니고 언어(말)이며, 사람의 길이자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말)를 받아 적은 글도 사람의 분신으로 같은 생명인 것이다. 사람이 내는 악기소리(말)가 곧 사람과 소통하는 인간의 영혼이며 꿈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소리(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나르는 짐꾼이며 그 품삯은 항상 사람으로부터 얻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 현대적 인간의 양심적 가슴의 소리가 훼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 가지 원인 중에 급속도로 도래한 것은 인터넷의 무분별한 상업주의로 인하여 특히, 예술적(서정적)감성이 상처받고 사람이 가고자 하는 옳은 양심의 장애가 되고 있다. 마치 거대한 열풍제조기(인터넷)에 중독되어 망상증 비슷한 정신적 질환이 유발되는 것이다. 그것이 안타깝게도 선한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유한 소리(언어)를 지닌 악기인 사람이 최고의 음색과 음률로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때때로 피아노를 조율하듯이 사람의 소리(언어)도 깊은 내면에서부터 표현까지 반드시 조율(調律)할 필요가 있다. 노자는‘도덕경’에서 소위 세상의 지도자를 일컬어 등급이 있다했다. 그 으뜸은 사람들이 그가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不知有之) 그 두 번째는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찬양한다. (親而譽之) 그 세 번째는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畏之) 그 다음은 사람들이 업신여긴다 (侮之) 라는 이 네 가지 등급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왕에 지도자 얘기가 나왔으니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한 시대의 정치적 지도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사람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낡거나 부패한 이미 시험대에 올랐던 썩은 부류는 사회의 진정한 봉사자(악사)가 될 수 없다. 아마도 잡음을 내는 지도자보다는 자신의 악기로 한음을 내는 유명한 악단의 연주자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지 않을까 새겨볼 일이다. 그것은 언제나처럼 인간의 보편적 이성과 감성의 지향점에 찬연한 꿈의 깃발이 되기 때문이다. 저기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최고의 관현악단으로써 왜 평양에 갔으며 세계적인 무대를 먼저 선점 하는가 새겨볼 일이기도 하다. 여지없이 다가올 금년 4월이면 지역별로 사람 중에 사람을 찾아내어 정치무대에 내 보내는 중요한 장이 열린다. 부지런하고 깨끗한 어떤 지도자가 어엿한 사회의 일꾼으로써 인간의 역사의 길에 서서 심부름꾼이 되고 소속된 관현악단의 멤버로써 자신의 악기로 조화로운 소리(말)를 내도록 파워 있는 에너지를 선사해야할 것이다. 이제는 칼로 뚝뚝 썰어 제 식구들의 뱃속이나 채우려는 교묘히 위장한 김밥말이 정치인은 정말 안된다. 그리고 누가 금이 가지 않은 새 항아리인가를 잘 두들겨 꼼꼼히 살펴봐야 할 일이다.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며 바른 선택인 것이다. 적어도 이번 4월에는 ‘잔인한 달’이 아니라 이 땅에 참신한 지도자를 뽑아내는 ‘축제의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서민이 먼저 살 맛이 나 팔뚝을 걷어 부칠 것이며, 배고픈 예술인들도 신이 나서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 아름다운 작곡을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가치의 회복이며 새로운 세상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사람이 최고의 악기며 예술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해답은 인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