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출신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이종일(李鍾一)님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의 한 분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분이다. 이종일님은 천재였으며 교육자였으며 민권 운동가였고 언론인이었으며 독립 운동가 이었고 천도교 간부였는가 하면 한글 맞춤법 연구를 한 한글 학자였다. 다시 말해서 3·1운동 당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지성인이었으며 사회 운동가였음을 알 수 있다. 호는 옥파(沃坡) 도호(道號)는 천연자(天然子) 본관은 성주(星州) 고향은 포천 출신이다. 학문을 일찍 익혀 15세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하였으며 상경하여 학문연구에 힘을 썼다. 고종 29년 1882년 사신으로 일본으로 갔으며 돌아와 정3품의 위계를 받았다. 1894년 보성보통학교 장에 취임하였다. 1896년 독립협회에 참가하였다. 또, 대한제국민력회에 참가 민권 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898년 제국신문의 사장이 되었다. 청년애국회에도 관여하여 일제의 침략정책을 공격하고 민족 자주정신을 일깨워 개화사상을 보급하는데 노력하였다. 천도교에 입교하여 월보과장과 보성인쇄 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에 피체되어 3년의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출옥 후, 조선국문연구회 회장이 되어 한글 맞춤법 연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님은 천재적인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성품이 강직하여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였으며 자기 주장이 뚜렷한 인물이었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애족 애국의 정신이 투철하여 일생동안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희생한 내 고향 포천 출신의 선구자였다. 조국은 1962년 뒤늦게나마 건국훈장복장(複章)을 수여하였다. 묘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독립운동가 묘역에 있다. 이 밖에도 3·1운동시 내 교향 포천 출신 33인은 권동진(權東鎭:1861년~1941년)등이 있다. 다른 고장에는 3·1운동공원도 만들고 동상도 세워 고향 사람들이 모여 3·1운동 당시를 화고하며 만세를 드높이 부르고 횃불행진도 한다고 한다. 33인의 세분이나 탄생한 내 고향 포천에도 3·1독립공원 한 곳쯤 있으면 어떨까? 그래서 매년 3월1일이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정신을 길이는 만세 운동을 전개하면 어떨까? 내 고향 3·1운동 당시 독립 운동가가 있어 내 고향 포천이 떠나갈듯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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