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때로 예술의 품(品)을 열심히 이해하여 감상하기보다는 사회적 이슈(issue)에서 변질되어 파생된 놀이감이나 스캔들(scandal)에 더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가 보다. 그것은 예술이 포용하는 미적 다양성 내지는 선한 허구성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숟갈로 입에 떠 넣는 것이 아니며, 정보의 들판에서 쥐를 쫓는 일도 아니다. 예술은 인간의 지성과 지식으로 정복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자연적으로 소멸되지도 않는 생명의 사과나무이자 사색의 고지(高地) 인 것이다. 예술은 언어가 존재하는 한 사람의 품성(稟性)으로 가꾸어질 영원한 정신이며 신화일 것이다.
그 예술의 품(品)이라 함은 인간의 허황된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찧고 까불러 대는 변명과 궤변의 술수가 아니라, 상상력의 공간속에서 부화되는 생명의 찬가인 것이다. 마치 새들이 둥지를 틀어 살아감에 있어서 벌레를 잡고, 햇볕과 달빛으로 몸을 반주하며 높은 하늘을 따먹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사람의 예술은 꽃빛과 꽃물로 늘 삶의 질을 높여준다. 그 모든 예술의 품(品)은 인간의 갈라진 논과 밭에 아니 메마른 살과 마음에 단비이며 꽃비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예술은 인간적 관계성을 주어진 매체를 사용하여 사람의 궁극적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 감당해야할 위대한 가치며 숙제이기도 하다.
또 그 예술의 품(品)은 사람의 산술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깊고 오묘한 우물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품(品)과 예술인의 품(稟)은 영원한 반려다. 곧 예술인의 품(稟)은 어떤 의미로든 사람의 삶 속에 그물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 나서는 부지런한 술래여야 한다.
또한 그 예술인의 품(稟)은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따져 묻는 인간에 대한 끈질긴 탐색이어야 하며, 정치적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 하거나 누리려 해서도 안된다. 반드시 사회적 썩은 마당에 낫과 빗자루를 들고 아름다운 모습과 모양으로 서야만 한다. 사람간의 건강한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희망의 나루를 다져야 함이다.
더 나아가 예술인은 인간의 유토피아를 향해 힘든 수레를 끌어야만 한다.
그래서 예술인은 사람의 짐과 하늘의 사랑을 함께 실어 나르는 고독한 심부름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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