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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화산서원(花山書院)과 배향인물(配享人物)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1월 23일

우리나라 서원은 중종 28년에 풍기군수 주세부 선생이 안향(安珦)선생을 모시기 위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운 것이 시초이며 우리 고을은 1660년 선조 때 문신 이항복 선생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화산서원(花山書院)이 시초이다. 원래는 백사(白沙)선생의 모심을 뜻하여 「백사서원」이라 하였으나 「꽃뫼」로 이전「화산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효종10년) 화봉산은 원래 수원최씨 소유였는데 서원에 희사하였으며 최장군이라는 사람이 하룻 동안에 혼자서 서원건물을 옮겼다는 전설이다.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1인1사(一人一祠)의 원칙대로 서원 철폐를 단행할 시, 북청의 「노덕서원」에 백사를 모시던 선비들이 포천에는 백사 묘소도 있으니 북청「노덕서원」에서 모시게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여 포천의 유림들이 양보하였으나 최근 1971년 포천 유림들의 노력으로 복원되기에 이르렀다.


「이정구」는 "공이 관직에 있기 40년 누구 한 사람 당색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초연히 중립을 지켜 공평히 처세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공에게서 당색이란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공의 문장은 이러한 기품에서 이루어졌으니 뛰어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하여 선비로서 공의 기품을 칭송하였으니 이로 미루어 백사의 인물됨을 알 수 있다. 「백사」는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소년시절에는 마을 불량배의 우두머리로 헛되이 세월을 보냈으나 어머니의 가정교육으로 교훈에 감동을 받아 학업에 열중하여 선조 4년(1571년)어머니를 여의고 3년상을 치르고서야 성균관에서 공부하여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데 선조8년 초시(1575년) 1580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로 벼슬길에 오른다. 1600년 영의정 겸 영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사, 세자사에 임명되고 호종1등공신에 녹훈되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기 까지 님은 조선조 최고의 명신(名臣)이자, 국란극복의 최선봉이 었으며 최고의 외교관이었으며 선조임금을 호종한 지조 높은 충의(忠義)의 최고봉에 섰던 내 고향 출신 선비였다.


서원은 사립 중등교육기관이었으나 임금이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면 튼튼한 재단으로 운영되는 국립학교나 다름 없는 교육기관이다. 요즈음 같이 1년에 한번 배향인물에 대한 제를 올리고 서원장을 선출 보임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봉제사 보다도 교육이 먼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백사 이항복」선생의 문충대의(文忠大義)를 본 받아 님의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이 연중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내 고장에는 만고 충신 백사를 모시고 있는 서원이 있다는 자랑보다도 백사와 같은 인물이 배출되도록 교육에 힘쓰는 서원이 되야한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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