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은 창작행위를 미끼로 하여 세상을 쉽게 낚으려는 상업적 수단으로 그물을 던질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혼과 꿈이 협연하는 생명운동의 닻을 올려야 한다. 예술은 반복된 교육과 이상을 통한 미적 사상을 창조하는 일이며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신앙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미 산업발전과 물질적 중독의 탈선으로 자연을 분노케 했다. 이는 엄청난 과오였고 파괴였음이 자명하다. 그 엄연한 사실이 자연 앞에 무모한 도전이었으며 또 하늘에 대한 바벨이었음을 이제 반성해야 한다. 물질문명의 화려한 칼날 앞에 인간의 정신은 여지없이 무너졌으며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다.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고한 이후 세계적 상황은 민족 간의 갈등과 반목이 조건적 요구불로 위협받는 시대가 되었다. 곧 문화의 충돌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성급한 변화의 욕심으로 민주주의적 매너리즘에 빠져 제도권이 외쳐대던 함성은 이제 멀미가 난다. 이것은 물질문명으로부터 불어오는 고독한 회의며 무서운 소외감으로 전이되기도 했다. 이로부터 파생된 고귀한 인간성의 상실은 지나친 풍요와 상대적 빈곤에서 얻은 변이의 바이러스다.
그러면 예술이 추구해야 할 몫은 과연 무엇인가. 자연과 사람과 사회가 공동으로 이루어 내야 할 삼중주의 하모니(harmony)다. 우선 인간이 이 땅을 어떻게 유용하게 관리하며 행복한 값으로 빌려 써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 스스로의 존엄에 타종을 해야 한다. 반드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만 한다.
불행히도 예술인들이 쏟아 온 관심사는 과연 어디에 무게를 두었던가? 창조적 작업보다는 현실적 다양한 소유의 욕구만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가치의 눈금을 올린 게 아닌가도 싶다. 게다가 명예적 욕망을 덤으로 얻으려 맹목적 탐욕을 부리지는 않았는가. 때로는 예술이 나태한 타성에 안주하여 새로운 비전을 내놓지 못했던 건 아닌지.
그러면 예술의 궁극적 이데아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마디로 행복 추구다. 아름다운 균형과 리듬에 부지런해야 함이다. 예술인이야말로 시대의 앞선자이며 사명자임을 자존으로 지탱하여 세상에 진솔한 등불을 밝혀내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예술이 진실한 물리로 일어날 때에 사람의 그릇에는 풍족한 양식이 쌓이게 마련이다. 나아가 예술인이 아름답게 행진할 때 사람의 옷에도 꽃이 피어나게 된다. 이제 자연과 인간이 화해와 소통의 관계로 나아가도록 예술인들은 목청을 돋우어야 한다. 아니 자연의 건강한 소리를 받아 적어 사람의 식탁에 올려야만 한다. 그래서 하늘은 푸르고, 숲은 짙고, 물은 맑으며, 땅은 기름지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그런 아침의 창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넘어진 생명을 다시 일으키며 인간의 대지에 예술의 씨앗을 뿌려 탐실한 문화의 꽃을 피워내야 한다. 신과 자연과 인간이 즐겁게 화답하는 화목한 세상으로 삽질을 해야만 한다. 바로 21세기 예술의 위대한 과제는 생명운동의 회복이자 실천이다. 포천의 예술인이여! 찬란한 마당에 어서 꽃불을 당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