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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 222] 용연서원(龍淵書院)과 배향인물(配享人物)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1월 03일

우리 고향 포천 최고의 선비정신의 본향(人之本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관광순례지(觀光巡禮地)」제1호인 곳이 바로「용연서원」이다.

「용연(龍淵)」이란 서원 곁에「용연」이란 연못이 있었던 연고라고 하지만 우리 고장 최고의 인물「조경(趙絅)」선생이 아끼시던 연못이 있던 곳이 어서「용연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옳은 대답일 것이다. 양사언 선생께서 한국 문학사(韓國文學史)의 최고의 명문장가로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겼는데「조경」선생께서는「포천(抱川) 읍지(邑誌) 견성지(堅城誌)」를 최초로 만든 분이며 포천을 누구 보다도 사랑한 분이 셨음이 왕조실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임진왜란 당시, 국란극복의 최고의 명신이자 외교관이며 명문장가였던「한음 이덕형」선생도 용연서원에 함께 배향되고 있다. 고종5년(1868년) 대원군 집권 당시 전국의 서원이 훼철의 위기를 맞았어도 용연서원만은 건재 할 수 있었던 것은 대원군 자신이 존경하는「한음」「용주」선생이 모셔진  「용연서원」을 감히 훼철 할 수 엇었으리라는 것이 정설(正說)이다. 숙종 17년(1691년) 「이사상(李師相)」등의 남인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여 건립되었다. 「한음」에 대하여는 잡설이 필요 없겠으나 「포옹산인(抱翁散人)」이란 호(號)가 포천인으로서는 매역을 느낀다. 「한음 이덕형」은 또, 「백사(白沙)」「봉래」와도 절친한 사이였으며 영의정「이산해」가 사위를 삼을만치 인물됨이 뛰어나다.


선조13년(1580년) 별시문과 급제 후 승문원의 관원이 되었으며 선조임금으로부터 서적을 하사 받을 만치 총애를 받았는가 하면 중국(明) 초사 왕경민(王敬民)과의 사사로운 면대를 거절할만치 공사(公私)가 분명한 공인(公人)이었다.


임진·정유왜란 당시 대명 대일 외교관으로 맹활약한 명재상이며 1608년 영의정이 되었다. 조경(趙絅)선생은 호가「용주(龍洲)」 「주봉(株峯)」이다. 1586년(선조19년) 10월6일 신북면에서 출생 가채리에서 살았는데 윤근수(尹根壽)의 제자이다. 광해 4년(1612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 인조4년(1626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한(포천출신 유일) 천재로서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조경선생은 한음과 같이 임진·병자란시 척화론(斥和論)을 폇으며 외교관으로 맹활약을한 인물이다. 1661년 판중추부사로 윤선도의 상소를 변호하다가 대간의 파직 상소로 논박을 당했다.


조경선생은 포천의 유응부 사당인 충목단이 성스럽고 바르게 모셔지지 않음을(바로 잡기를) 상소한 충신이었으며 1658년에는 「행부호군(노인직)」에 임명「기로소(耆老所)」들어 가는 영광을 누렸다. 조경선생과 한음은 용연서원에 모셔진 명현(名賢)이란 점도 중요하지만 이분들의 행적을 연구하고 되새겨 빛내는 교육체험, 저서번역도 우리의 몫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8년 0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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