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에 끌리게 된다. 부모님께는 딸로, 오빠에겐 동생으로, 직장에서는 교사로 살아가는 나는"여성"이다. 생물학적으로 나누어지는 성은 "남성"과 "여성"둘 뿐인데, 50%의 확률 속에서 선택되어 세상의 반을 이루는 집단에 속해 있다.
억눌린 것은 폭발하고, 금지된 것일수록 깨뜨리고 싶어진다. 가정에서 여동생에게 오빠는 항상 존중하고 받들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오빠가 배고플 땐 "여동생"이 밥을 차려줘야 하지만, 정작 오빠의 머리 위로 지나갈 수도, 오빠의 옷이나 신발 에 함부로 손댈 수도 없었다. 오빠가 서울의 대학교에 진학할 때는 남자니까 당연히 더 크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했지만, 딸은 서울의 대학교에 합격해도 여자인데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에 시달려야 했다. 참을 수 없는 의문이 고개를 들어도 엄마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너는 딸이니까 오빠랑은 다르잖니."
나와 엄마는 분명 같은 여성인데, 엄마는 왜 오빠만을 우선하는 걸까? 문득 두려워진다. 정말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일까? 어느 한쪽의 성이 다른 성보다 우수하고 지배적일까? 이러한 가정과 사회 속에서 성장하는 나도 어느새 엄마와 같은 모습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100년 전, 이해조는 당시 우리 사회에서 부족하고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가장 먼저 꼽은 것은 "학문"의 중요성으로 특히 여자들이 꼭 배워야 한다고 힘있게 강조하였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남자우위의 사고방식이 굳어져 있었을 텐데, 시대를 앞서 생각하고 가장 큰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명쾌하게 집어내었다. 결국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나오고, 여자가 없다면 인류도 이어질 수 없는데, 여자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존재이므로 여자가 학문을 닦아야 사회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학문"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면 어떤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인가? 학문을 담은 그릇인 말에는 사람의 정신과 기백이 담긴다고 보았다. 일시에 한문을 없애기는 어려우니까 서서히 국문으로 바꾸어나간다면 이것이 우리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또한, 교육은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하며 예의범절을 지니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하였다. 교육에 작용하는 가장 큰 힘이 어머니이니, 여자의 교육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력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변화시킬 수 없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토지가 비옥하여야 마땅히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악한 풍습을 시급히 고쳐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평등"사상에 일찍 눈을 뜨고 이것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일찌감치 꿰뚫어보았다.
소설이 쓰여진 시대에 가장 강하게 염원하던 것은 나라가 오뚝이처럼 온전히 서는 것이었다. 꿈을 빌려 얘기하지만 오뚝이를 "오독립"으로 적으며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여자를 남자보다 낮게 보아 학문의 기회를 주지 않았고, 우리의 온전한 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실력보다는 신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토대가 나라의 독립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었을 것이다. 변화를 추구하고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살펴보는 작가의 "눈"이 반짝 빛난다.
글 전체에는 상황을 명쾌하게 담아내는 예시와 정곡을 찌르는 설명, 긴장을 풀어주는 재치가 있다. 갑자기 터진 물꼬처럼 한 인물의 대사가 다소 길지만 그 안에 담긴 다양한 내용과 변화무쌍한 표현 덕분에 지루하지가 않았다.
소설이 의미를 갖는 것은 소설을 읽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혹은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에 따라 소설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오랜 고통 끝에 대한독립은 이루었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균형을 유지하고 온전하게 발전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현재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 때문에 여아보다 남아의 선호도가 매우 크다. 여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도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으며 능력을 온전하게 발휘하지 못한다. 학문을 추구하는 데 기본이 되는 우리 "말"은 세계화의 주도자인 영어에 조금씩 밀려가고 있으며, 신분차별보다 더 큰 빈부격차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어깨는 남성보다 무겁다. 같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육아와 가사노동의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중 삼중의 어려움 속에서도 일을 해내는 한 직업여성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고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럼에도 용기내어 당당하게 외친다. "깨끗한 옷 입혀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는 게 아이들에게도 더 오래 기억될 거야."
우리 사회는 불완전하지만 바꾸어나갈 부분이 있기에 또한 매력도 있다. 여성의 능력이 온전히 인정받고 ,우리의 것을 지키며 다른 문화의 강점을 끌어들인다면 사회의 기초가 튼튼하게 다져지고 강한 나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문화적 풍요로움이 사회 계층의 불평등을 감싸안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자주독립을 누리게 되리라 믿는다.
종은 이미 100년 전부터 울리고 있다. 계속 줄을 잡아당겨 끊이지 않게 종을 울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종소리가 작고 미미하여 힘이 약할 것 같지만 그 종소리가 주는 울림은 명쾌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