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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 221] 서원마을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2월 21일

「서원 마을(말)」하면 신북면 신평리를 이르는 말이다.「용원서원」은 한국의 서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치 유명하다. 용연서원이 대원군 집권시 훼철되지 않았던 사례를 내 세우고 자랑하지만 사실은 서원마을이 조선조 초기 이후, 조정에서 별궁(別宮)을 지을 예정지로 확정하고 공사가 시작되었다가 중지 된 명당이라는 점이 왕조실록에 남아 있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0호(76.8.27)로 지정될 만치 보전(保傳) 가치가 높다. 「한음」과 「용주」가 자라고 말년에 은거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원마을」에 대한 정감(情感)을 느낀다. 「조경」은 1643년 일본에 통신부사(通信副使)로 다녀와서 「동차록(東嗟錄)」이라는 기행문을 남기는 저술가였다.


병자호란 당시는 「김상용」「오달제」「홍익한」「윤집」「이경석」등과 함께 척화론(斥和論)을 폈던 「조경」선생이다. 「삼학사(三學士)」와 함께 오랑캐들에게 볼모로 끌려가야 했으나 도승지「이경석」의 간청으로 겨우 위기를 면하기도 한「조경」선생이었으며 저서로는 「용주집(龍洲集)」23권과 전술한 동차록(東嗟錄)등이 있고 내고향 포천 읍지인 「견성지(堅城)」가 있어 포천을 연구 하는데 귀중한 근거자료로 활용되고 있음은 특기할만 하다. 「용주(龍洲)」란 이름도 「용연(龍淵)」에서 나온 님의 호이다. 또 「한음(漢陰)」이 이곳에 은거한 이유는 어렸을때 살던 유전(柳琠)의 집이 포천에 있었기 때문이다. 장인인 남인의 거두가 아닌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사위가 되어 한 때, 남인과 북인의 중간 노선을 지켰으나 뒤에는 남인이 된 「한음」은 남인 「용주」와 함께 「용연서원」에 배향이 된 것이다. 요즈음 용연서원은 역대 서원장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서원의 사명인 「선현의향사(先賢之享祠)」「향촌교화(鄕村敎和)」지방교육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 흐믓하다. 합리적인 서원 경영으로 신북?영중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전통예절을 교육하여 모범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고 대학 진학자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장학,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한 일이다.


포천 소재「대진」「경복」대학교에 「조경 선생 연구소」도 생기고 앞으로 「용연」도 복원하고 조경 용주선생의 전기도 발행하고 문집도 한글로 번역하는 사업도 행해졌으면 하는게 큰 바램이기도하다.


조경 용주선생 추모의 노래도 만드로 새로 조성할 「용연」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공원도 만들고 「한음」이나「용주」선생의 시비도 세우고「찬시비」도 만들면 어떨까? 체험학습과정을 통해 교육청 주관 지역교과서에 「조경」「한음」의 역사나 전기를 통해 충의(忠義)사상을 고취함도 좋을 것이다. 「조경」선생의 후손 중에는 파리대학 교수를 비롯하여 훌륭한 자손들이 있다니 자랑스럽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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