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權慄)은 난초(亂初)에 광주목사로서 군사를 일으켜 싸웠는데, 진산 배고개에서 대첩하여 드디어 전라도 순찰사가 되었으며, 이어서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여 수원 독산성에 웅거, 명군과 계책을 세워 서울을 회복하려다가, 이여송이 벽제관 싸움에서 패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으로 이거하였다.
이 행주산성은 강안에 우뚝 솟아있는 고산(孤山)으로, 한쪽은 강에 직면하고, 그 외에는 광막한 평야로 둘러있고, 동쪽은 준험하고 서북측은 완만하여 입구를 이루고 있다.
이 때 병사 선거이(宣居怡)는 군사 4천여 명을 이끌고 금천(시흥)에서 응원하게 되고, 창의사 김천일은 강화에서 해안으로 출진하고, 충청감사 허항(許項)은 통진에서 응원을 하기로 하였다.
권율의 친솔군은 만여 명에 불과하였으나 도망갈 길이 없는 험지에 웅거하였으므로 결사의 용기를 품고 있었다.
서울의 왜군은 벽제관 싸움에서 이미 대승을 거둔 터라 교만해졌고, 또 군세의 성대함을 믿고 있는 터였으므로, 일거에 이 산성을 빼앗고자, 2월 12일 새벽에 부대를 나누어 총병력 3만여 명으로 습격하여 왔다. 홍백기, 황금산, 귀면수형(鬼面獸形), 기타 형형색색의 괴이한 분장과 장식을 하고 들을 까맣게 덮어오는 왜군의 모습은 장관이었고, 산성은 겹겹으로 포위되었다.
우리편 군사는 권 장군의 지휘 아래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적군이 가까이 육박해 오기를 기다려 화살과 돌을 우박같이 퍼부으며, 또 각종 총기를 발사하여 왜군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 그러나 적군은 굴치 않고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누어 일휴 일진(一休一進) 끈기있게 공격해 왔다. 적군의 함성과 총소리는 천지를 진동하고 또 그 탄환은 비오듯 쏟아져 방어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권율은 친히 물통을 들고 다니며 병사들의 목마름을 달래 주었다.
이 싸움에는 부녀자들까지도 총동원하여 앞치마로 돌을 날라다 주고, 물을 끓이고 하여 싸움을 도왔는데, 이 때부터 부녀자들이 앞에 두르는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왜적은 종일토록 진퇴를 거듭하다 불리해지자 마지막 방법으로 마른 풀을 묶어 거기에 불을 질러 성책을 태우려 하였다. 그러나 성에서는 물을 끼얹어 이를 껐다.
처음에 승장 처영(處英)을 시켜 승병 일천 명을 거느리고 서북쪽의 성을 지키게 하였는데, 이 때 왜군이 고함을 지르며 돌격해 들어와 승병이 그만 내성으로 쫒겨 들어왔다. 그러자 권율은 칼을 빼어 들고 앞장서서 달려가 왜병을 베며 제장을 독전하니, 우리편 군사들은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그리하여 왜적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패하여 달아났다.
이 때 적은 후퇴하면서 자기편 군사의 시체를 쌓아놓고 불태운 후 돌아갔는데, 타는 냄새가 십리 밖에 까지 뻗쳤다 한다.
승리한 우리편 군사들도 달려 나와 그 즉시로 적군의 시체를 수습하여 수급(首級) 백 30여 두를 얻고 적군의 활과 기갑, 조총 등 7백 20점을 노획하였다.
아무튼 이 싸움에서 적의 대장 우끼다 히데이에, 요시가와 히로이에(吉川廣家),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등까지도 부상을 입었고 나머지 장졸의 사상자는 부지기수요, 죽은 자만도 태반이었다 하니 이 얼마나 큰 전적이며, 또 통쾌한 승첩이 아닐 수 없었다.
권율은 전공으로 후에 도원수가 되어 제군을 통솔하고 영남에 주둔하였다.
이 무렵 이여송의 명군은 개성에서 장차 서울을 칠 기세이었고, 행주산성에서 대승한 권율과 김병원 등이 거느리는 조선군은 고양, 파주 등지에서 왜군의 보급로를 끊었으며, 이순신의 수군은 해상에서 일본 수륙군의 연락을 불가능케 하여 전세는 차츰 왜군에게 불리해졌다. 게다가 사대수(査大受), 이여매(李如梅) 등 명나라 장수와 조선 대신 유성룡은 은밀히 군사를 이끌고 용산에 쌓아 둔 적의 군량 10만 석을 모두 불질러 버렸으므로 왜병들은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전염병까지 유행하여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으므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서울을 버리고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이 때 이여송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였더라면 커다란 전과를 거두게 될 것을, 그는 벽제관 싸움에서 혼이 난 후로는 겁을 먹고 싸움을 피하였기 때문에 왜군은 완전히 철수하여 남쪽 해안 지대에 진을 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