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을 일으킨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히 곽재우(郭再祐)는 으뜸가는 명장이었다. 그는 여러 번의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일이 없었으므로 역사에 기록하기를, "군사 쓰는 데 귀신같아서, 위엄이 세 나라에 떨쳤다."고 하였다.
곽재우는 항상 붉은 옷을 입고 싸웠는데, 그 옷은 처녀의 첫 번 월경피로 물들여 만든 것이어서 순수한 음기가 능히 철환을 막았으며, 또한 그의 전법이 신속하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실로 변화무쌍하였다. 그리하여 왜군 장졸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게 되었다. 그로부터 그는 "천강 홍의 장군이라고 불리었다."
그의 신기묘산은 실로 측량키 어려웠다. 그는 군사들에게 저마다 바가지 한 개씩을 차고 다니게 하여 그것으로 물도 떠 마시고 밥도 담아 먹게 하였는데, 한번은 무쇠로 바가지를 만들어 갖고 다니다가 싸움을 끝내고 돌아갈 때 길에 버려 두었다. 왜병이 그 곳에 이르러 무게가 백 근이나 되는 바가지를 보고, 그런 무거운 바가지를 하나씩 차고도 나는 듯이 돌아다니는 홍의장군의 군사들은 실로 귀신인가 보다 하였다.
그리고 또 한번은 옻칠을 한 관 속에 벌 몇 통을 담아다 버려 두었다. 왜병들이 다투어 보물이나 들었는가 하고 열어보니, 난데없는 벌떼가 터져 나와 전 군중을 요란케 하였다. 그 뒤에 또 그런 관을 버리자 벌로만 알고 왜군이 불 속에 집어 던졌다가 폭발하여 일개 부대가 온통 몰살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곽재우의 이름은 적병들은 물론, 울던 어린애들까지 울음을 그칠 정도로 무서운 대명사가 되었다. 아직도 우는 어린애를 달랠 때, "아가 곽쥐 온다, 곽쥐!"하는 말은 "곽재우 온다, 곽재우!"하던 말에서 연유된 것이라 한다.
그는 난리가 끝난 뒤,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도 사양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서 도를 닦다가 신선이 되었다 한다.
황해도 지역이 왜병의 약탈하에 있을 때, 고군(孤軍)으로 연안성을 지키어 대첩의 공을 세운 이는 초토사(招討使) 이정암이었다.
그는 연안성에서 패잔한 군졸들과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늘에 맹세한 뒤, 대거 쇄도하는 왜병을 맞아, 조금도 겁내지 않고 탄환이 비오듯 하는 곳을 몸소 앞장서서 사졸을 독려하며 싸웠다.
"대장이 몸을 아끼지 않는데, 우리가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하며 사졸들은 모두 용전하였으므로,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의 두 번이나 돌격해오는 군대를 격퇴시키고, 성을 지켜 냈다.
그런데 행재소에 보고 할 때는, "아무 날 적병이 쳐들어왔다가 아무 날 물러갔습니다."하였을 뿐, 싸움에 이겼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싸움에 이긴 것보다도, 그가 공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더욱 가상하다고 여겼다.
경상 좌병사 박진(朴晋)은 회음 밀양에서 싸워 패하였으나 평양이 회복되고 명군이 남하한다는 소문을 듣고 민병 수천 명을 다시 모집하여 경주성을 쳤다.
그 때 그의 비장 이장손(李長孫)이 진천뢰포(震天雷砲)라는 화포를 만들어 사용하자 그 위엄에 눌려 왜장 사까가와 사이죠(坂川采女)는 능히 지켜내지 못하고 서생포로 패주했다. 리하여 다시 경주성을 탈환하고, 군량 만여 석을 얻었다.
이 밖에도 경상도의 김면, 정인홍(鄭仁弘), 유종개(柳宗介), 이대조(李大朝) 등과 전라도의 고경명(高敬命), 김천일, 최경회(崔慶會) 등이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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