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에서 주인공 휴 그랜트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백수 생활을 하는 남자다. 30대 후반의 휴 그랜트는 독신으로 살며 여자와는 즐기는 것 이상을 바라지 않는 미성숙한 아이 같은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 그가 우울증에 시달리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년을 만나면서 성숙해져 가는데 그 훈훈한 영화가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다. 영화 속에서 휴 그랜트는 상속받은 유산으로 호화로운 백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그 유산이라는 것이 바로 "산타의 수퍼 썰매" 라는 캐롤 저작권이다.
아버지가 남긴 캐롤 한 곡으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다는 설정이 마치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작곡가 어빙 벌린(Irving Berlin)을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다. 1911년에 "알렉산더스 래그타임 밴드(Alexander"s Ragtime Band)"라는 곡을 작곡하여 미국 대중문화를 바꿔놓은 어빙 벌린(Irving Berlin)은 1942년에 유명한 캐롤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를 작곡했는데 이 한 곡에 대한 로열티는 상당한 액수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빙 벌린은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04년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죽은 사람들(Dead Celebrities The Top Earners)" 8위에 선정되었다. 그 액수는 10위를 기록한 리처드 로저스보다 50만 달러나 많은 700만 달러인데 물론 캐롤 단 한 곡 만으로의 수입은 아니겠지만 매년 들어오는 그 돈은 가히 후손들이 백수 생활하며 평생을 즐길 수 있는 액수다. 캐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이미 수천만장 이상의 음반이 팔렸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직도 매년 연말이면 어김없이 전 세계적으로 방송이나 거리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어빙 벌린이 작곡한 또 하나의 대중적인 곡 ꡐ갓 블레스 아메리카ꡑ는 미국의 국가적인 중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연주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911 사건 이후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전쟁목적을 합리화시키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자주 사용했는데 공식적인 행사나 메이저리그 같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 울려 퍼지게 했으며 이때 모든 사람들이 기립해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물론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가 벌어들이는 액수(4,000만 달러)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우리가 음악사용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다운로드받고 CD나 DVD를 구입하는 돈의 일부가 어빙 벌린이 남긴 유산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어빙 벌린은 미국 대중음악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3천곡이 넘는 그가 남긴 음악은 전 세계 어느 작곡가가 남긴 음악보다도 많은 숫자이며 히트곡 숫자만으로도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개별적인 음악을 주로 작곡했지만 17편의 필름 스코어를 남겼으며 21곡의 브로드웨이를 위한 스코어도 남겼다. 특히 1946년에 <애니여 총을 잡아라(Annie Get Your Gun)>를 발표하여 뮤지컬 무대를 위한 명작 레퍼토리 하나를 선사했다. 이 뮤지컬도 많은 곡들이 히트했는데 특히 "쇼 비즈니스 같은 비즈니스는 없다(There"s No Business Like Show Business)", "내가 결혼하게 되는 소녀(The Girl That I Marry)", "나 역시 인디언(I"m an Indian, Too)"등이 유명하다.
1940년대에 어빙 벌린은 여러 편의 뮤지컬 영화를 위해 스코어를 작곡했는데 모두가 명작의 대열에 드는 성공적인 작품들이었으며 어빙 벌린을 뮤지컬 영화 작곡가로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가 들어있는 영화 <홀리데이 인(Holliday Inn)>도 이 시기에 나왔다. 무대를 위해서는 모두 세 곡의 뮤지컬을 작곡했는데 <애니여 총을 잡아라>이외에 <미스 리버티(Miss Liberty)>를 1949년에 발표했으며 전쟁 중에는 병사들을 위해서 위문공연단을 결성하고 수많은 전쟁터를 오가며 <디스 이스 디 아아미(This is the Army)>를 공연했다. 어빙 벌린의 애국심은 상당했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나이가 많아 군인이 되지는 못하고 애국적인 노래들을 작곡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다. 그의 위문 공연 <디스 이스 디 아아미(This is the Army)>는 영국,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등 막바지의 치열한 전투로 공습이 잦은 곳에서도 강행되었으며 중동과 태평양 전선에까지 가서 공연되었다. 전쟁 후에 어빙 벌린은 그 공로로 미국의 투르만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40년대는 어빙 벌린의 작곡 인생에 있어서 최절정의 시기였으며 최고의 곡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