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럭고개」「무레골」「무릎고개」란 여러 이름을 가진「문례현(問禮峴)」은 포천 신읍동(옛 이름:장거리, 새장터)에서 신북면 심곡리(깊이울)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필자도 깊이울에서 태어나 6세 까지 살았으며 장거리로 이사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나를 여섯 살까지 업어 길러준 애보기 옥희가 물어 고개 까지 업고 와 고갯마루에 서서 내가 나귀 등에 옮겨 타고 장거리 요골 모롱이로 사라질 우렵까지 나를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앞치마로 닦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고개이기도 한다.(66년 전) 신북면 고일리에는 이헌(怡軒) 성여완(成汝完:고려, 충선왕 1년 1309년~조선 태조 6년 1397년)과 그의 아들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고려 충숙왕 7년 1338년~세종 5년 1423년)의 묘가 있다. 이헌 성여완과과 그의 아들 독곡 성석린에 대하여는 여러 필진을 통하거나 TV사극을 통해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며 두 인물을 모르고서는 여말 국초(麗末 國初)의 역사를 논할 수 없을 만치 유명한 인물이다. 성여완대감은 말년을 계류리에서 살았으며 그의 묘도 고일리에 있다. 그래서 성여완대감은 왕방산을 바라보며 말년을 살았으며 「왕방거사」로서 누구나 함부로 찾아 오기 힘든 곳에서 은거(隱居)하였던 것이다. 은거처인 계류리를 찾아 고려 충신 성여완에게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사로 하여금 출사(出仕:벼슬길에 나아감)할 것을 권하러 갔을 때 예(禮)를 갖추고 넘던 고개라고 하여 문례현(問禮峴) 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아들 독곡대감이 고개를 넘을 때 영험한 왕방산을 바라보며 옷깃을 여미고 예를 갖추며 넘어서 「문례현」이란 설도 있다.
어떤 사람은 「물어 물어」「꼬불 고불」넘어서「물어고개」라는 사람도 있다. 또, 기운 없는 아기 신랑이 색시 집이 매우 지체가 높아 두려워 무릎으로 기어 넘어서 깊이울 처가댁을 찾아 갔다는 전설이 있다. 8.15해방이 되여 왜놈들이 물러 갈 때 까지 왕방산「물어고개」는 호랑이 산신령님이 살아서 밤이면「물어고개 성황당」을 지키고 앉아 있다고 하여 무서워 떨며 넘지 못하던 고개이기도 하다. 호랑이에게 뺨을 맞았다는 「부전어미」도 깊이울에 살았으며 요즈음도 깇이울 마을 당제(堂祭, 음 3월3일과 9월9일)를 지내는「물어고개」이기도 하다. (왕방산 산신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