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내 각처에서는 민족적 의분이 넘쳐흘러, 산림 속에서 글을 읽고 있던 선비들과 심산에서 도를 닦고 있던 승려들까지도 자진 궐기하여 의용군을 조직하고, 왜병들과 싸웠다. 즉 조헌(趙憲), 곽재우(郭再祐), 고경명(高敬命), 김천일(金千鎰), 정문부와 같은 유생들과 휴정(休靜) 및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같은 승려들이다. 도처에서 왜병과 싸워, 혹은 육탄으로 장렬한 죽음을 하고, 혹은 적을 쳐부수어 공을 세운 이도 많았다.
특히 조헌은 승장(僧將) 영규(靈圭)등 7백 의사(義士)와 함께 전라도 금산에서 왜적을 맞아, 최후의 한 사람까지 육탄으로 돌격하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은 당시 고승(高僧)으로서 묘향산에서 수도 중이었는데, 임금 선조의 소명에 응하여 격문을 8도 승려들에게 발하였고, 그의 제자 유정과 함께 1천 7백 명의 승병을 이끌고 명군과 연합하여 평양 탈환에 대공을 세웠다. 또 그의 제자 처영도 의병을 다수 모집하여 관의군(官義軍)의 총대장이라는 전투병단의 막하에 들어가 활약하였다.
이 중에 사명당(四溟堂) 유정은 그의 스승 휴정의 명을 받들어 승병을 일으켰던 사람인데, 그는 도술이 신통한 중이었다.
그가 병신년(丙申年)에 사신으로 일본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다.
일본의 관백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그의 위력을 꺾어 볼 양으로, 접견을 거절하고 군졸들에게 명하여 어느 깊은 산 속에 감금시켜 놓고 먹을 것을 주지 말라 하였다. 흰 눈이 산야에 덮힌 겨울철에 그렇게 10여일이 지났으니 히데요시는 응당 그가 굶어 죽었으려니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가보라 하였다. 그러나 사명당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처음 앉았던 돌 위에 그대로 앉아 있는데, 얼굴에 화기가 가득하고 눈빛이 별같이 영롱하여 조금도 주린 빛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앉은 바위 둘레 수십보 안에는 눈이 한점도 내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회보를 듣고 히데요시도 그가 예사 중이 아님을 알고 인마를 보내어 데려오게 하였다. 그리고 사명당이 돌아오는 길가에 10여 리에 뻗친 긴 병풍 하나를 쳐놓게 하였다. 그 병풍은 원래 중국 진시황 때 도인 서시(徐市)가 일본에 조공하고 바친 책을 베껴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서시는 동남동녀(童男童女) 3백 명을 거느리고, 삼신산에 들어가 불로초를 캐어 오겠노라 하고는 진시황의 허락을 얻어 배를 타고 지금의 서시도란 섬에 상륙하여 그 곳을 개척하고 살았는데, 이 서시도는 일본에 가까운 섬이었으므로, 일본에 조공하고 책 한 권을 바쳤다. 후에 진시황이 천하에 있는 모든 서적을 다 불사르게 한 까닭에, 그 책은 한 권밖에 남지 않은 귀중한 책으로, 후에 일본 조정에서는 그 책을 큰 보물로 알고 소중하게 여기다가 병풍으로 만든 것이었다.
사명당은 말을 타고 가면서 그 병풍을 보았다. 자랑하기 위하여 내놓은 것인 줄을 그는 짐작하였다.
히데요시의 집에 이르르니, 히데요시는 반가이 맞으면서, 실례하였노라며 사과의 말을 하였다. 이에 사명당은「명성과 도량을 지닌 장군이 타국 사신을 마치 옛날 중국 한나라 때 흉노가 소무(蘇武)에게 하던 법을 쓰려하니, 실로 가석한 일이외다.」
하였다. 히데요시는 더욱 무안하여 재삼 사과하면서 묻기를,
「어째서 선생은 춥고 배고프심을 모르십니까?」
하고 물었다. 사명당은 대답하기를,
「춥고 덥고 배고프고 배부름은 속인들이나 염려할 일이 외다.」
하고 나서 히데요시의 태도가 아주 누그러졌음을 본 그는, 굳이 강권하여 두 나라 사이의 강화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서로 화평하게 지내자는 조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히데요시는,
「선생은 아까 길 옆에 세워 놓은 병풍을 보셨습니까?」
물었다. 사명당은,
「예, 보았소. 헌데 그 병풍에 쓰인 글쯤은 우리나라에서는 삼척동자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소이다.」
하였다. 히데요시는 웃으면서,
「내 들으니 불가의 제자들은 거짓말을 모른다던데 선생은 어찌 거짓말을 하십니까?」
하고, 그 책 내력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책이 귀국에 있을 리 만무하다고 하였다. 사명당은,
「그렇게 믿기 어려우시면, 내 그 글을 욀 터이니 들어 보시오.」하고, 10여 리에 뻗친 병풍 속의 글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내리 외는 것이었다. 히데요시가 대경 감탄하였슴은 물론,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딱 벌린 채 다물지 못하였다.
그 후, 일본 사람들은 사명당의 높은 덕과 학행을 흠모하여 사당을 짓고 봉사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