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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선비정신 = 81] 나를 잊지 않은 이가 너를 돌보아주리라

포천한시사 대표 리 효 종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1월 06일

송순이 이조참판으로 있을 때, 그는 찬성 허자(許磁)와 합심하여 조정에 어진 이를 천거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권신들의 미움을 사 5년 동안이나 유배당하였다. 이후 그는 항상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친척 중 한사람이 울분을 토해내며 말했다.


"지방 출신으로 재상이 된 사람 치고 벼슬을 마친 후 서소문으로 나오는 사람만 보았지 남대문으로 나오는 이는 보지 못하였다."


이는 대개 도성에 와서 벼슬을 하는 이는 죽을 때까지 도성을 떠나지 않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당시 지방 출신의 정승들은 서소문 근처에 많이 살고 있었다.


그 후 송순은 개성유수(開城留守)를 사직하고 시골로 내려가려 하였다. 그때 그 친척이 강가에 나와 전송하였다. 송순은 서로 술잔을 나누며 그에게 말했다.


"보셨지요? 나는 지금 남대문으로 나왔습니다."


당시 지방에는 향안(鄕案)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친가와 외가 모두 선비 집안 출신들만 가려 따로 이름을 기록한 것이었다. 외가나 아내가 다른 고을에서 왔거나 대단한 양반 가문 출신이 아니면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향안에 기록될 수 없었다. 때문에 웬만한 벼슬을 얻는 것 보다 향안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다.


송순이 대사헌으로 있을 때였다. 그의 고향은 전라도 담양이고 외가는 남원이었다. 하지만 가까운 조상이나 친척 중에 크게 성공하여 큰 벼슬에 오른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비록 높은 벼슬에 있었지만 향안에 기록될 수 없는 처지였다.


그가 휴가를 얻어 고향에 성묘를 하러 왔는데, 고을의 선비들이 향청(鄕廳)에 모여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즉시 음식을 성대히 차려 수십 명의 짐꾼에게 들려 향청에 보냈다. 그러고는 그 고을의 어른에게 말했다.


"대사헌이 음식을 보내 고을의 어른과 선비들에게 대접하려 하는데 이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자 고을 어른들이 모두 옳다고 여겼다. 고을 어른들이 음식을 먹고 나자 한 노인이 말했다.


"주인을 불러 우리와 합석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향청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들 좋다고 하였다. 향청에 모인 사람들이 이윽고 송순에게 사람들을 보내 청했으나 송순은 일부러 나오지 않았다.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부른 다음에야 송순은 못이기는 척 향청에 나왔다.


송순이 향청에 나와 좌우를 둘러보니 늙은 선비들 중에 자신과 동갑이면서 생일이 약간 빠른 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공손한 표정으로 그 늙은 선비가 앉아 있는 다음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는 고을의 선비들을 각별히 예우한다는 표시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어른들이 송순을 향해 말했다.


"대사헌이 이미 모임에 참석하였으니 향안에 올리지 않을 수 없소이다."


이윽고 고을의 어른들이 향안을 가져다가 송순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송 순 (宋 純)


1493년(성종 24) ~ 1582년(선조 15).


본관은 신평(新平)이며 자는 수초(遂初) 또는 성지(誠之). 호는 기촌(企村) 또는 면앙정이다.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권지부정자를 거쳐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1533년 김안로가 권세를 잡자, 귀향하여 면앙정을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된 뒤 홍문관에 들어가 부제학을 역임하고, 경상도 관찰사와 사간원 대사간 등을 지냈다. 1550년 대사헌과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대윤 세력에 의해 서천으로 귀양갔다. 이듬해에 풀려나 1552년 선산 도호부사가 되고, 전주부윤과 나주목사를 거쳐 한성판윤․우참찬을 지낸 후 은퇴하였다.


그가 지은 면앙정에는 임제, 김인후, 고경명, 임억령, 박순, 이황, 소세양, 윤두수, 양산보, 노진 등 많은 인사들이 출입하며 시 짓기를 즐겼는데, 조선 시가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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