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나 영화, 혹은 TV드라마를 보면서 신파(新派)니 신파조(新派調)니 하는 말을 자주 듣고 써왔다. 신파하면 눈물을 연상하고 다소 과장된 연기를 떠올리게 되는데 1910년대부터 일본에서 유입되어 그 후 많은 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신파극의 영향은 오늘날에도 모든 드라마 장르에 걸쳐있다. 특히 TV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에는 다른 장르보다 신파의 정서가 더욱 많이 깔려 있다. 일본 명치시대에 발생해서 신연극 혹은 신극으로 불린 일본의 신파극이 일제치하에 있었던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물론 신파극의 유입에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천황의 군대로 조선을 탄압한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의 무력감을 신파의 눈물로 달래게 했다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의 신파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일본식 정서를 여과 없이 피상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였다는데 문제가 있었다는 견해도 있었다. 오늘날 멜로적인 드라마의 경우 신파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이별의 장면이라든가 결투 장면 혹은 죽음의 장면에서 필요이상의 시간을 할애하거나 지나치게 울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배우가 말하는 대사에 있어서 지나친 설명투 또한 신파의 영향이다. 특히 개그맨들이 하는 과장된 몸짓이나 이상한 어투 그리고 라디오 드라마에 짙게 나타났었던 변사조의 어투와 한탄, 설교 등도 모두 신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에 서양의 리얼리즘 연극이 유입되어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하는 작품들도 공연되기는 했지만 신파의 인기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930년대에 신파적인 드라마에 가수의 노래와 무용을 추가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구 음악극을 모방한 악극(樂劇)이 그것이다. 뮤지컬과 유사한 형태의 연극양식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된 음악극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공연도중에 막간을 이용하여 변사나 삐에로 같은 출연배우들이 짤막한 코미디나 만담, 가요, 숨은 장기 등을 보여주는 막간극이었는데, 이것이 의외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자 독립적인 오락물로 공연하게 되었고, 노래, 춤, 코미디 등이 연관 없이 나열되던 종래의 형태에서 벗어나 하나의 일관된 줄거리를 갖추면서 가극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서양의 보드빌이나 뮤직홀의 형태와 유사하지만 드라마가 좀 더 짜임새가 있었다는 점에서 한 걸음 진보된 음악극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 신파극이나 일종의 대중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동안 가극은 태양극장, 낙랑좌 등에 의해 더욱 드라마적으로 보완된 연극양식으로 다듬어졌는데 악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악극은 1930년대 유명한 연극 공연장이었던 동양극장을 무대로 당시의 상업적인 인기극단들이 앞을 다투어 공연하여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악극단에는 가수들뿐만이 아니라 만담, 연극을 하는 배우들과 때에 따라서는 마술까지 곁들이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야말로 만능 예술 단체였으며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이 된 이후 1950년대까지 무대 예술을 주도해 갔다. 조선 악극단, 반도 가극단 등 대표적인 악극단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었던 악극은 195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TV 방송국이 개국이 되면서 많은 악극 멤버들이 텔레비전에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서영춘, 구봉서 등 코미디언 1세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이미 텔레비전이 개국하기 이전에도 영화의 개성 있는 조역으로 인기를 얻었었다. 더욱이 1962년에 창단한 예그린 악단이 한국의 현대적인 뮤지컬을 시작함으로써 악극의 시대는 사실상 마감을 했다고 할 수 있다. IMF 이후로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두에 한때 악극이 여러 극단에 의해 재현되기는 했지만 올드 세대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일회성 상업연극일 뿐이었다. 이렇듯 악극단은 열악한 음반시장에 라이브 무대를 찾기 힘들었던 1950년대의 가수들에게는 활동의 무대를 제공해주었고 전쟁으로 인해 피폐된 우리 대중들에게는 즐거움과 문화의 공간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왔는데 한국동란의 폐허가 복구되고 TV 시대가 도래하자 악극단의 인기는 점점 시들해져서 지금은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연극사의 한 양식으로 기록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