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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 213] 효자「유회일」과「안순창」의 지효(至孝)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0월 12일

아버지 참판 추담공(秋潭公)이 일동면 유동리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관례에 따라 3년동안 시묘(侍墓)살이(묘 곁에서 묘를 돌보며 아침 저녁으로 상식을 올리고 이발, 목욕도 안하고 사는 정성어린 효자의 삶을 말한다.)를 하는 도중 노숙(路宿)(묘막을 지어 살지 않고 묘 앞에서 자고 사는 삶)을 하다가 죽었다. 나라에서는 상중에 죽은 효자 유회일공에게 정문(旌門)을 내렸는데 6·25때 소실되였다고 한다. 창원 유씨로 참판 유창(兪昌) 추담공(秋潭公)의 아들이다.

일찍이 현석 박세채(玄石 朴世采)의 아들 같은 제자로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덕이 매우 높았다 한다.


의금부 도사(義禁府) (都事)에 제수되었으나 은거하면서 학림에서 학문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은거하고 있던 양양땅에서는 선비들이 물제사(勿劑司)를 세월 향사(享祀)하였다 한다.


효자 안순창(安順昌)은 고향이 강원도 회양인데 영조7년(1731년) 내촌면 소학리에서 살았다. 영조 22년(1746년) 3월 집에 큰 불이 났다.


이 때 효자 안순창은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 돗자리에다 어머님을 싸서 들에 업고 나왔다. 그런데 효자 안순창 자신은 온 몸이 불덩이가 되여 타고 큰 화상을 입고 쓸어지면서도 어머님의 생존을 묻고 유언을 하였다. 안순창 효자는 이렇게 죽었다.


"우리 집 소를 잡아 어머님 봉양하는데 쓰고 만약에 돌아가시면 팔아서 장례 치르는데 쓰고 나의 일에는 조금도 쓰지 마시요." 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을 남기자 마자 효자 안순창은 곧 죽었다. 10여일 뒤 효자 안순창의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한다.


아내는 남편인 효자 안순창의 유언대로 소를 팔아서 장례를 극진하게 모시었다. 이 사실을 본 마을 사람들은 물론 고을 사람들은 효자 안순창과 그의 아내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고을 선비들이 이 안순창 효자의 효행을 상소하였다.


상소문을 본 순창의 효행에 대해 나라에서는 급복(給復:부역의 의무를 면제하는 양반 대우)을 명하였으니 상민에게 주는 영광이었다.


효자 안순창은 양반도 아닌 상민으로 날품팔이로 겨우 연명하는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양반도 하기 힘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효(孝)를 다하였다는 점이 본 받을 만 하다.


만약에 안순창이 양반이었다면 효자 정문이 내려졌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끼게 한다.


강원도 회양 사람이 효자 고을인 내 고향 포천에 와서 보고 듣고 배운바있어 효자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금이라도 효자비를 세우면 어떨까?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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