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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선비정신 = 79] 역사를 기록하는 붓은 아무나 잡을 수 없다

포천한시사 대표 리효종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0월 12일

1519년 조광조가 변을 당하는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채세영은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이었다. 그는 조광조가 체포되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대궐로 들어가 영의정 정광필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정광필 역시 그 내막을 자세히 몰랐으므로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채세영은 다시 남곤에게 물었다. 남곤은 대답하기가 곤란한 듯 우물쭈물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임금 앞에 이르자 정광필이 채세영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사관은 사실대로 기록하라!"


그러자 채세영은 붓을 들고 임금에게 간절히 간하였다.


"조광조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려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조광조의 죄를 정확히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에 채세영은 붓을 든 채 한 자도 적지 않고 버텼다. 그때 김안로 일파인 승지 김근사(金謹思)가 채세영이 들고 있던 붓을 빼앗아 자신이 쓰려고 했다. 그러자 채세영이 다시 승지로부터 붓을 빼앗아 잡으며 말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붓은 아무나 잡을 수 없다."


그러고는 임금께 아뢰었다. "신은 임금에게 간을 올리는 신하는 아니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일 외의 일을 전하께 아뢰는 것은 죄가 되오나 이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러는 것인지 죄명을 듣고자 하나이다. 영의정도 모르는데 대체 누가 이런 일을 알고 있습니까? 여기 우의정이 있으니 한번 물어보십시오."


좌우에 있던 신하들은 모두 목을 움츠린 채 눈을 피하였고, 우의정 안당도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만 해댔다.


훗날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채세영의 기개를 칭찬했다.


"이 세상에 군자는 오직 채세영 한 사람뿐이다."


기묘사화로 일시에 뜻 있는 선비들이 모두 화를 당하고 쓰러지자 오직 그만 우뚝 남아 조정 신하들 사이에서 빛났다.




채세영(蔡世英)


1490년(성종 21) ~ 1568년(선조 21).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자는 영지(英之). 호는 임진당(任眞堂)이다. 1510년(중종 5) 진사에 합격하고, 15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19년 검열을 거쳐 춘추관 기사관이 되었다. 기묘사화 때 파직되었다가 복직된 후 1537년 대사성이 되었고, 1539년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명종 때 여러 벼슬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1550년 호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을 겸직하였고, 『중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공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내고 우참찬을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7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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