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대가집에선 예비며느리의 혹독한 시험기간이 있었다고 한다. 시험관은 시어머니시다. 살얼음 같은 냉혹한 질문에 막힘 없이 답을 말하고 수 차례 어려운 질문에 통과하면 그때서야 며느리 감으로 인정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거기에 따른 부당한 대우로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연일 내리는 비로 베란다의 된장 항아리 주변에 뿌연 곰팡이가 점점 검게 변하고 있다. 마른 휴지로 닦아봐도 그 순간뿐이다. 구순이 내일 모래인 우리 어머님이 이제 그런 곳에 눈여겨보실 안목을 접으신 것 같다.
새댁시절 쉽사리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에 꼬투리를 잡으시며 꾸지람을 주시던 서슬 퍼런 눈빛이라곤 찾아 볼 수 없으니... 그저 조용하게 늙어 가시는 그 모습이 머지 않은 날의 내 모습 같다.
가끔은 아들네 집에 가서 눈여겨보면 지적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슬며시 자제한다. 어린 손주 녀석이 먹던 밥은 그냥 음식물 쓰레기 속으로... 집에 있을 때는 천 기저귀 쓰라고 일부러 사다주고 일러 주건만 1회용 기저귀의 편한 맛에 중독이 되어버린 젊은 엄마들이 어디 우리 아이들뿐이겠는가? 또다시 눈감고 참아보고....
그런데 다 눈감아주고 지날 수 있는데 금새 커 가는 아이들 소모품에 메어커 딱지가 붙어 있어야만 좋아하는 며느리나 딸에게는 그냥 넘길 수가 없다. 화살은 물론 딸아이에게 먼저 간다. 거기에 왜 답이 없으랴.
시댁 집안 누구네 것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물려받을 곳이 없는 며느리는 또 다른 이유다. "어머니 요즘 엄마들 아이들한테 다 좋은 거 사주고 싶어해요."
놀이방도 명품! 명품 중독에 걸린 듯이 수입만큼 지출의 타산도 맞아야 하는데 때로는 초과해서 사들이는 것을 보면 정말 모진 벌이라도 주고 싶지만 거기 따른 부작용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식한 시어머니 광고하는 것 같고 또한 변해 가는 세월을 속일 수 없으니 그저 눈감고 못본 체 해야 하나 보다.
긍정적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위험수위에 오르지 않고 저 입고 먹을 거 아껴 새끼 사랑에 몰입된 처마 밑 제비 둥지에 어미 제비 같다. 어쩌랴. 내게 주어진 시계 바늘은 옛날 그 시간에 멈췄으니 나는 언제고 그런 시간 속에 편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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