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시련과 극복의 산등성이를 등반하는 산행이었다. 그 사이에 잠깐의 휴식과 샘물로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욕심일 뿐, 시간 앞에 놓여 진 삶은 다시 산을 올라야 하는 시련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홀 시어머님과 손위 시누이 3분 그리고 어려운 목장살림 등 어려운 조건으로 가득 찬 막내 외아들의 아내자리를 자처한 언니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형부가 외아들인지라 아들이 많아야 한다고 해서 계속 낳은 것이 아들 하나에 딸만 연년생과 쌍둥이로 3이나 되어 버렸다. 딸 쌍둥이를 낳은 것이 못마땅한 듯 시어머님은 은근히 언니를 구박했지만 그것도 묵묵히 긍정해 버리고 마는 언니는 무슨 마음으로 30년 세월을 걸어 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이란 굴곡이 있듯이 형부가 열심히 일을 하여 어려운 살림을 우뚝 일으켜 세우셨고 이제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재산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건강이라는 능선이 형부 앞에 놓여 져 있었다. 술을 워낙 많이 드신 탓도 있지만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야겠기에 돌보지 못한 몸이 이제는 병명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훤칠한 키에 기세 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환자복을 입고 계신 어깨가 내려앉은 것을 보니 아마도 내리막길을 달리는 인생의 한 능선이었다.
유학 가있는 자식들과 친분 있는 사장님들이 많지만 형부 옆에는 언니만 있을 뿐이었다. 언니가 챙겨주는 약을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는 형부에게서 "자식새끼보다 마누라가 최고야!" 라고 할 만도 하건만 아직도 언니 앞에서는 큰소리로 위엄을 찾으시는 것을 보니 금방 당당하게 일어서서 활동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형부가 잠시 능선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시 극복의 산행을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과연 지금 어느 능선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돌아보았다. 딱히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극복의 능선을 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다시 어떤 시련이 온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