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權威)란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권위주의(權威主義)란 말도 들어봤을 것이다. 또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는 말도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권위"란 무엇이며 또 권위와 "권위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권위란 절대(絶對)를 말하는 것이다. 오쏘리티(authority)를 말하는 것이다. 절대란 "상대(相對)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가 끊어진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하나는 인간 사이에서 말하는 절대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에서 말하는 절대이다.
"자연의 관점(觀點)"에서 볼 때 인간 사이에서 말하는 절대는 절대가 아니다. 인간 사이에서는 절대이나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을 다스리는 섭리(攝理)를 놓고 보면 절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말하는 진리(眞理)를 놓고 보면 절대(絶對)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말하는 절대는 절대이되 진리가 말하는 절대가 아니란 말이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서만 통하는 절대라는 말이다.
인간 사이에서 말하는 절대는 상대적(相對的)인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永遠)하지 않다는 것이고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가 있으니 "하나"일 수 없고 상대가 있으니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라는 말로 표현을 하는 것은 그 순간은 정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상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의 진정한 의미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차원에서 상대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공차원(時空次元)에서 상대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만 대적할 것이 없다면 그것은 절대가 아니다. 권위가 아니다. 그것이 영원(永遠)해야 한다.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선 그것이 영원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거나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면 그 자리를 비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공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영속성(永續性)을 말하는 것이다.
권위란 이처럼 "절대의 잣대"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절대의 잣대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주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그게 아니다. 권위주의는 "과거 한 때; 절대의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는 절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거 한 때" 절대의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 하나로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석권(席卷)하려 하는 것이다. 한 때는 통했으나 지금은 안 통하는 것이다. "과거의 잣대"를 가지고 지금을 재려하는 것이다. 이것이 권위주의(權威主義)이다.
한 때는 통했으나 지금은 안 통하는 잣대를 가지고 석권하려하니 무리가 생기는 것이다. 한 때 절대의 자리를 지켰다 해서 지금도 지킬 수 있다는 억지를 부리니 무리가 생기는 것이다. 영속성이 없는 잣대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을 재단하려 하니 무리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瞬間)에 "절대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영속성(永續性)을 가지고 "절대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해서 절대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영속성을 지니려면 부단히 노력(努力)해야 한다. 절대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각고(刻苦)의 노력을 경주(傾注)해야 한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한 순간도 정지되어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생물이라고 하는 것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한다. 그래서 풍화작용(風化作用)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멈춰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절대의 자리, 권위의 자리는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권위주의는 배격(排擊)하되 권위는 존중(尊重)해야 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