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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조귀순] 잉어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4월 02일
 
< 조귀순 / 수필가, 포천시 가산 출신, 저서《여치와 사담》 >
 
전철역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일찍 도착해 무심히 앉아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시간을 묻는다. 가까운 동네에서 나온 듯 꽃무늬 몸배 바지에 빛바랜 자주색 잠바 차림이다. 오십 대 후반쯤 돼 보였다. 그녀는 약속한 사람을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연락해보라고 주었다. 아주머니는 전화번호를 집에 놓고 왔단다. 새벽차를 타러 나오기 직전에 통화를 해서 당연히 올 거라 믿었다는 것이다.
 
잠시 보이지 않던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희미하게 무슨 한약방이라고 찍힌 까만색 헝겊 가방을 들었다. 터질 듯이 빵빵한 가방은 몹시 무거워 보였다. “저기 애기엄마. 이거 잉언디 가져가서 과먹어유.” 나는 너무 생뚱맞다 싶어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감자나 고구마라면 모를까, 잉어라니. 첫아들 태몽이 맑은 물에서 노니는 커다란 잉어였다.

산골에서 자란 나는 큰 물고기를 접하지 못해선지 비린내 나는 생선도 싫어하거니와 둘째 아들 태몽도 남자 팔뚝만 한 잉어였다. 태몽 풀이에 잉어의 전설과 설화가 예사롭지 않았다. 중국에서 잉어는 용이었다. 범상치 않다는 믿음으로 나는 잉어를 신성시하는데 그걸 고아 먹으라니 전혀 내키지 않았다.
 
“저그 충청도 예산서 내가 손수 지른 잉어유. 병환 중인 이종이 과먹었시믄 해서 젤 존눔으루 골라 왔는디 몬만난 걸 워쪄유.” “무슨 사정이 있겠지요. 조금 더 기다려 보셔요.” “틀렸슈. 인거 이틀 전에 잡어 꽁꽁 얼린 건 게 생물이나 매한거지여유. 과잡샤유.” 나는 뒷걸음을 치며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어이구우, 엄층이 귀헌 건 게 과먹으라는 거유.”
 
그녀는 마치 내게 떠넘기려고 작정한 듯 들이댔다. 그리 귀한 거면 도로 가져가지 왜 날 주려 할까. “도로 가져가믄 다 녹아서 버려야 혀여. 버리긴 아깝자녀유.” 내 속을 꿰뚫듯이 말하는 걸 보니 아주머니는 틀림없이 꾼 같았다. 팔아치우려는 뻔한 속셈일 거다. 수년 전 추석 무렵에 탑차 기사가 자꾸만 손짓을 하여 나는 차를 길가로 세웠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라 길을 묻나 했다. 

젊은 기사는 백화점에 납품하고 남은 제주 옥돔을 납품가로 주겠다며 보기만 하라고 이끌었다. 싸게 준다는 말에 현혹됐는지, 못 팔고 가면 사장에게 혼난다는 말이 걸렸는지 두 박스를 샀다. 어수룩하게 생긴 젊은이가 딱해 보여 이웃에게 소개까지 해주려 했다. 안 하길 잘했지, 옥돔은 아주 작고 뼈만 앙상하니 형편없었다. 그 전에 수입 소꼬리도 한우인 줄 알고 산 적이 있지 않은가. 속는 것도 한두 번이고 그땐 내가 세상 물정 모르던 삼십 대였다. 매스컴과 주변에서 들은 사연이 많아 이젠 나도 알만큼은 안다.
 
“몸두 빼빼허니 약해 보이누먼. 내 몸부텀 챙겨유.” 그녀는 딸내미 거둬 먹이는 어미처럼 애달파 하면서 내 앞으로 가방을 밀었다. 투박한 손 등에 퍼런 힘줄이 툭툭 불거졌다. 밭일하다 호밋자루 던져놓고 금방 온 듯 뭉툭하게 닳은 손톱 끝엔 흙 때가 시꺼멓게 끼었다. 그 손으로 파마가 풀려 푸시시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시골 사람 행세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나를 걱정하는 척 접근한 장사꾼 같은데 한편으론 마음이 흔들렸다.
 
“여자도 지 몸은 지가 애끼야유. 몸에 존 거니 가져 가유.” 흔들리는 나의 눈빛을 읽었을까. 그녀는 매듭을 지으려고 쐐기를 박았다. 차비라도 건지려는 촌로의 모습이 어쩐지 애처로웠다. 가다가 버릴지언정 잉어를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헌데 가진 돈이라곤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간 만 원짜리 두 장뿐이었다. 그거라도 받아준다면 어른에게 차비 드리는 셈 치면 된다.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냈다. 차비에 보태시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가 쏜살같이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몇 걸음 따라갔지만 “아니유. 잘 과먹기나 혀유.” 손을 저으며 겅중겅중 계단으로 내려갔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은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 빵빵한 가방을 들고 구석으로 갔다. 이젠 돈을 안 받고 사라진 게 더 찜찜했다. 정말 잉어는 맞나. 겹겹으로 싼 신문지를 손톱으로 헤집었다. 축축한 냉기가 손끝에 닿았다. 습기가 차오른 뿌연 비닐봉지 속에서 내 엄지손톱만 한 비늘이 보란 듯이 몸을 드러냈다. 틀림없는 잉어다. 설마 오염돼 죽은 물고기는 아니겠지. 몹쓸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잉어를 들고 건강원으로 갔다. 건강원 아저씨는 잉어에 첨가하면 좋을 약재를 읊어대다 갑자기 이 잉어는 어디서 났냐고 따지듯이 묻는다. 역시, 이상한 거였나. 굳어버린 내 표정이 의아하다는 듯 아저씨는 “아니, 이렇게 좋은 잉어를 어디서 구했냐”고 재차 물었다. 가느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더 구할 수 좀 없겠냐고 진짜 탐을 냈다.

한창 아이들 키우느라 진이 빠진 사십 대 애 엄마를 보고 아주머니는 당신의 젊은 날이 떠올라 챙겨주고 싶으셨던 걸까. 선(善)을 선으로 받지 못하는 젊은이를 보면서 아주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건강원 문을 열고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불었지만 내 얼굴은 한참이나 화끈거렸다.

< 조귀순 / 수필가, 포천시 가산 출신, 저서《여치와 사담》 >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6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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