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종걸 / 수필작가 > |
| 세월은 떨어뜨리고, 우리는 붙이며 살아왔다. 용접봉 끝에서 튀던 불꽃처럼 우리의 청춘도 한때는 눈부셨다. 학창 시절 찍어 두었던 사진 한 장을 꺼내 들면, 그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은 채 조용히 일렁인다. 그러나 사진을 들여다보는 지금의 우리는 그때와는 다른 얼굴로 서 있다. 머리카락은 희어졌고, 이마에는 시간의 그을음이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식지 않은 온기가 남아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을 용접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1975년 6월, 열아홉의 우리는 기초 실습을 마치고 전공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배관과는 배관·용접·판금 작업으로 쇠를 변형시키는 ‘쇠의 마술사’라 자신들을 소개했고, 기계과는 정밀가공의 세계를 내세웠다. 설명을 듣는 동안 내 가슴은 불꽃이 튀는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배관을 택했다. 뜨겁고 거친 현장이 오히려 나를 끌어당겼다.
실습장은 늘 열기로 가득했다. 쇠와 쇠를 녹여 붙이고, 파이프를 굽혀 이어 붙이고, 금속판을 자르고 접어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불꽃이 튀고 망치 소리가 울렸다. 단단한 쇠가 손끝에서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세상 또한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쇠보다 먼저 자신을 다듬고 있었다. 거친 소음과 뜨거운 불빛 속에서 서로의 성정을 맞대며 청춘을 단단히 이어 붙이고 있었다.
그해 가을 열린 전교생 종합 체육대회에서 우리 과는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인원은 적었지만 하나였다.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함성 속에서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던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의 이음새가 되어 있었다. 그날의 환호는 이후의 시간을 버텨내는 큰 힘이 되었다.
삼 년은 짧았다. 우리는 땀과 쇳내 속에서 울고 웃었다. 밤늦게까지 실습을 마치고 허기를 달래던 날들, 어지러운 가스를 마시며 이를 악물던 시간이 차곡차곡 쌓였다. 거칠 것 없던 소년들은 어느새 단단한 청년이 되어 전국의 산업 현장으로 흩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삶을 배워 갔다.
입학하던 날의 다짐은 분명했다. 다시는 가난을 짊어지지 않겠다는 것, 부모 세대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일했다. 전공을 살려 현장을 지킨 친구도 있고,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이도 있다. 나 역시 다른 제복을 입고 삼십사 년을 현장에서 보냈다. 직업은 달랐지만 닮아 있었다. 식어가는 순간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금이 가는 자리마다 자신을 스스로 이어 붙였다.
세월은 우리를 가장으로 만들었다. 부모를 떠나보내고 자식을 키워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각자의 삶을 일구었다. 돌아보면 인생은 거창한 완성이 아니라, 끊어질 듯한 순간마다 다시 이어 붙이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흔들리고 식어가면서도 끝내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세월이 쌓아 올린 간격은 금세 사라졌다. 깊어진 주름 사이로 여전히 소년의 웃음이 번졌다.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오랜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여백이었다. 떨어져 있었을 뿐, 끊어진 적은 없었다.
요즘도 단체 대화방에는 모임 일정이 오르내린다. 오십여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한자리에 선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우리는 다시 모여 그 시절을 이야기할 것이다. 불꽃 대신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망치 대신 술잔을 부딪치며. 그 만남은 단순한 회포가 아니다. 오래 떨어져 있던 마음의 결을 다시 맞대는 일이다. 또 한 번의 용접이다.
빛바랜 사진 속 소년들은 이제 중년이 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이 우리를 낡게 했을지라도 우정만은 녹슬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자신을 이어 붙이며 살아간다. 그리고 다시 만나는 날, 그 이음새 위로 작은 불꽃 하나가 조용히 튈 것이다. 그 작은 불꽃이면, 우리는 다시 이어진다.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 공모전 우수상 수상.(2021) 제6회 대한민국 다문화 인권문학상 공모전 동상 수상.(2025)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 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