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알리고 싶다. 대한민국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라고. 그러나 그 문장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다 보면 가슴 한켠이 저려 온다. 평화를 말하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선, 분단의 상징인 38선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긴장과 오래된 불신이 그 선 위에 겹겹이 쌓여 있다.
2026년 2월 19일의 선고는 법정에서 마무리되었지만, 나에게 2월 20일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사법적 단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마침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처벌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고, 문화와 교육과 참여는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늘 ‘구조’를 생각한다. 갈등을 잠재우는 구조, 권력을 통제하는 구조, 시민이 주인이 되는 구조 말이다. 민주주의는 구호로 지켜지지 않는다. 촘촘한 제도, 책임 있는 참여, 일상의 감시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유지된다.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은 일회성 분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문화가 되어야 한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펜을 드는 일이다. 칼은 선을 긋지만, 펜은 선을 해석한다. 펜이 강해지려면 상대를 베는 언어가 아니라 연결하는 언어를 써야 한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과 ‘콩콩밥밥’의 식탁 문화를 꿈꾼다. 함께 밥을 짓고, 함께 나누고, 함께 책임지는 작은 공동체.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따뜻한 일상에서 시작되는 연대다.
이 식탁은 남쪽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북쪽에도 닿아야 한다. 적대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언어로, 체제의 경쟁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으로. 분단의 상징 위에서 총성이 아닌 수저 소리가 울리는 날을 상상해 본다. 그 상상은 허상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다.
나는 기본을 넘는 시대를 꿈꾼다. 단지 생계를 보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보편적 고소득의 사회. 일이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설계하는 시대. 그것은 정부 혼자 만들 수 없고, 시장만으로도 오지 않는다. 시민의식과 교육, 문화적 자본이 함께 쌓일 때 가능하다.
하나가 모여 둘이 되고, 그 둘이 다시 하나와 손을 잡을 때 공동체는 확장된다. 12월의 어두운 밤도 결국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남는다. 분열의 기억으로 남길 것인가, 각성의 계기로 바꿀 것인가.
대한민국은 충분히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실에서, 마을에서, 식탁에서, 그리고 펜 끝에서 만들어진다. 시민이 깨어 있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경계선 위에서 식탁을 꿈꾸며 펜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