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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걸/ 수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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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출근길, 빗방울이 흩뿌리던 사무실 앞. 한 남자가 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탁한 눈동자에는 피곤이 가득했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붉음 속에는 단순한 숙취가 아니라, 오래 묶인 세월의 그림자가 번져 있었다. 누렇게 뜬 눈, 푸석한 피부, 볼록하게 나온 배. 등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진 안쓰러운 중년의 초상이었다.
그는 가정폭력 현행범으로 체포된 49세의 회사원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우리 사무실 문턱을 넘은 익숙한 얼굴. 그의 인생은 술에서 시작해 술로 무너지고 있었다. 직장 상사에게 바른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영업 부서로 밀려난 이후, 술은 그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낯선 사람을 상대로 웃어야 하는 자리마다 폭탄주가 있었고, 그 술잔을 비울수록 자신을 잃어갔다.
그의 술은 단지 알코올이 아니었다. 자존심이 무너진 자리에서 솟아오르는, 일종의 자기방어였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았고, 마시면 조금씩 더 망가졌다. 자신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술로 달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 여직원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배, 오늘 힘들어 보이세요. 내일 점심이라도 같이하실래요?”
그녀의 다정한 말은 무너질 준비가 된 그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처럼 번져갔다. 그는 그녀의 마음속으로 푸딩에 스푼이 스며들 듯 천천히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위로였고, 곧 위안이 되었으며 이내 일상의 균열로 번졌다. 한밤중, 잠든 아내 곁에서 휴대전화 불빛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외도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어떤 이는 흔들리고, 어떤 이는 이겨낸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가.’그는 후배와의 만남을 줄이며 마음을 다잡았으나, 그 결심은 언제나 술 앞에서 무너졌다. 술에 취하면 다시 후배를 찾았고, 술이 깨면 후회했다. 술은 위로이자 폭력이었고, 결국 그의 삶 전체를 잠식해 갔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외도는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된 결핍일 뿐입니다. 진짜 채움은 스스로를 풍요롭게 할 때 오는 법이지요.” 하지만 그는 내 말을 흘려들었다. 하루가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났다. 그의 술병 속에는 망가진 자존심, 외로움, 그리고 끝내 붙잡지 못한 자신이 있었다.
몇 달 뒤, 그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도 술을 마셔요… 도무지 끊지를 못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 있었다.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점점 인간의 껍데기만 남았다.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그는 늘 술을 찾았다. 마치 그것이 숨 쉬는 일이라도 되는 듯. 그의 끝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술에 취해 무너졌고, 결국 그 술에 삼켜졌다. 사람은 술에 취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에 취해 무너진다라고나 할까..
요즘 가끔 그를 떠올린다. 탁한 눈빛, 알코올 냄새, 무너진 자존심의 잔해 속에서도 그는 단 한 번이라도 구원을 꿈꾸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덮은 외로움의 그림자는 너무 짙었다. 그의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서도 자라났고, 웃음 사이에서도 웅크려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세상 어딘가엔 또 다른 ‘그’가 오늘도 술잔을 들고 있을 것이다. 불타는 유혹 속에서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찾으려는 사람들, 그들은 아직 모른다.
“진짜 인생의 빛은 뜨겁지도, 찬란하지도 않은, 고요한 일상의 평온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 공모전 우수상 수상.(2021) 제6회 대한민국 다문화 인권문학상 공모전 동상 수상.(2025)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 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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