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돌아왔다. 개울가에 복숭아 꽃이 활짝 핀 봄날 해 질 무렵이었다. 앞마당으로 들어선 남자를 보고 여자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던지며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여자를 끌어안았다.
“애 엄마, 나요. 나, 내가 왔소.”
“애아부지? 애아부지요? 애아부지가 맞어요?”
울음을 터뜨린 여자는 꿈인가 싶어 자신의 팔뚝을 꼬집어보았다. 세 살배기 딸아이의 엉덩이를 철썩 때렸다. 아이가 아프다고 우는 걸 보니 꿈은 아니었다.
남자는 징용으로 끌려갔다. 한국 전쟁 중 북한군이 두 번째 남침한 때였다. 마을에 들어온 북한군은 젊은 남자들을 보는 대로 잡아갔다. 남자들은 산속에 숨어서 찬밥덩이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으나 이념이 달랐던 한 사람이 북한군에게 일러바쳐 잡혀간 것이다.
갓 서른의 여자는 눈앞에서 남자를 보냈다.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살아만 돌아오게 해달라고 새벽 첫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물을 장독대에 올리고 치성을 드렸다. 손바닥이 헐도록 빌었다. 그리고 행주치마로 눈물을 훔치며 밥솥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검불과 여자 속이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흰쌀 한 줌 얹은 쪽에서 남자의 밥부터 푸고 고봉으로 퍼 담은 밥주발을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어느 때고 남자가 돌아와서 이 밥을 먹을 거라며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을까. 남자가 이태 만에 돌아왔다.
여자는 마루에 걸터앉은 남자에게 냉수 한 사발을 내놓았다. “정녕 이게 꿈은 아니지요?” 또 물었다. 남자는 냉수를 쭉 들이켜고 빈 사발을 든 채 여자를 쳐다봤다. “꿈 아녀. 정말 기적적으로 살아왔소. 천운이지, 천운. 근데, 저어, 나 사람 하나 델구 왔오. 여자여. 남자 혼자서는 위험해서 도저히 넘어올 수가 없었소.”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여자 대답을 무시하고 대문 밖으로 나가더니 젊은 여자의 손목을 잡고 들어왔다. 여자는 또 넋이 나갔다. 차라리 그리워하며 사는 게 나았을까. 남자는 이 여자가 아니면 살아올 수가 없었다며 넘어온 경위를 설명했다. 어디인지 모르는 전쟁터, 언제 죽을지 모를 공포에 떨면서 오로지 고향으로 돌아갈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낮엔 포 소리에 웅크렸고 해가 지면 암흑천지라 떨었다. 명주실만 한 불빛이라도 새어 나가면 남쪽 비행기의 폭격이 떨어질까 무서워 절대로 불을 켜지 못했다. 도망치려면 어둠이 유리하겠구나. 그림자도 없을 그믐밤이 적격이었다. 한 번 기회를 놓치자 또 한 달이 훌쩍 넘어갔다. 애가 탔다. 남자는 달 모양을 관찰하며 보름달이 뜨면서부터 잔기침을 해댔다. 하루, 이틀, 시나브로 달은 기울고 습관처럼 해대는 기침에 사람들 반응도 무뎌졌다. 죽어 나가도 그만인 판에 남의 기침 따위는 걱정할 여건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드디어 그믐날 밤, 남자는 초저녁부터 기침을 했다. 몇 번 들락날락하며 가래침을 뱉었다. 첫잠에 코 고는 소리가 뒤죽박죽일 때 밭은기침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캬아악, 가래침을 뱉는 척하며 나왔다. 오줌 누는 시늉을 하고 서서 돌아보니 아무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 길로 냅다 뛰었다. 처자식에게로 가려고 목숨을 내던졌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다 두들겨 맞아 성치 못한 다리로 뛰었다.
별자리로 방향을 찾았다. 낮엔 산속에 숨고 밤에만 숲을 헤집어 며칠, 어슴푸레 먼동이 틀 무렵 민가 한 채가 보였다. 기진맥진하며 헛간으로 숨어들었다. 깨어나 보니 노부부만 살고 있는 집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 젊은이가 가엾어 보였을까. 노인이 밥을 내주고 며칠 묵어보라더니 당분간 그쪽 사람처럼 살라며 숨겨주었다. 그리고 어수선한 시기에 내려가라고 일러주었다. 남자 혼자는 위험하니 여자를 데리고 가라며 기회를 봐줬단다.
남자의 말을 듣고 여자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리고 시국이 만든 현실을 받아들였다. 영영 못 돌아올지도 모를 타지에서 젊은 남자의 혈기와 전쟁의 불안과 외로움은 공포였을 것이다. 홀아비인 줄 알고 따라왔을 젊은 여자도 가여웠다. 여자는 젊은 여자에게 입을만한 옷가지를 내주고 남자가 잡혀갔을 때 잠시 머물렀던 큰집 사랑채로 갔다. 하지만 농사는 지어야 먹고살 게 아닌가.
여자는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도망쳐 오느라 기력이 쇠약해진 남자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난리 끝에 산골에서 보양식이라 한들 뭐가 있겠는가.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고 수시로 콩을 불렸다. 남자가 콩 음식을 좋아했다. 밤새 맷돌에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되탕을 끓여댔다. 맷돌을 돌리면서 여자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냈다. 그런데 젊은 여자에게 태기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땐 눈앞이 캄캄했다. 이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 아들이 우선인 세상에서 조강지처 자리도 위태로웠다.
세상 이치는 본바탕대로 흐르는 것일까. 젊은 여자가 떠났다.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다. 남자는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다. 읍내를 헤집고 다녔으나 허사였다. 남자는 한동안 입을 닫았다. 동트면 지게를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갔다가 해 질 녘에야 돌아왔다. 목숨을 내놓고 따라와 준 젊은 여자, 당신을 다시 태어나게 해줬는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필시 뱃속 아이가 잘못되어 머물 구실을 잃은 것 같다고, 무던히도 잘 해준 여자에게 미안해서 스스로 떠난 것 같다고 말들을 했다. 여자는 도를 닦듯이 마음을 삭이며 남자 입맛을 돋우려 더 진하게 되탕을 끓여냈다.
남자가 산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 울 안팎을 손보고 삐걱대던 마루도 평평하게 맞췄다. 안방 문짝의 묵은 창호지를 뜯어 아궁이 불에 쳐넣었다. 말로는 뱉어내지 못하는 묵은 속내도 같이 태워 버렸으리라. 햇살 받은 새 문풍지가 뽀얗게 말라 갔다.
그 후 나에게는 둘째 언니가 생겼다.
《에세이스트》 (2020 올해의 작품상)
*되탕: 포천, 연천, 철원, 황해도 등지에서 먹던 토속음식으로 콩을 되게 갈아서 쑨다 하여 붙여진 이름.
< 조귀순 / 수필가, 포천시 가산 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