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BUS대합실 출입구에서의 일이다. 난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나가려고 오는 어느 아가씨와 마주쳤다. 얼굴을 쳐다보니 낯이 약간 익은 듯 하였다. 이렇게 한 후 난 대합실안 의자에 앉고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의자에 앉아 봉투에서 Shopping회화 책을 꺼내 보고있노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가씨는 중학교 동창생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Shopping책을 계속 보았다.
조금 책을 보다 얼굴을 들어 앞을 쳐다보니 그 아가씨가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서슴없이 일어서서 아가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화산중학교....」하고 물으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다고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다. 그 아가씨의 이름은 중학교 3학년때 나와 거의 같은 근처의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받았던 권점선이었다.
「어디가는길」 이냐고 물으니 삼례에서 와리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 언니 집을 가야한다고 대답하였다. 다시 「무엇을 하냐?」 고 물으니 그냥 집에서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일을 돌보는 그러한 얘는 아닌 것 같은 눈치였다. 너무나도 모처럼 만나 즉 중학교 졸업 후 7년만에 만나니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으며 얘기를 이렇게만 하고 헤어지기는 아쉬워서 다방으로 가 차나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하니까 그 얘가 그러자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2개의 가볍고 작은 가방 비슷한 봇다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2개의 가방을 가지고 같이 걸으며 좁은 읍내에서 다방을 찾았다. 다방에 들어가(이때의 시간은 오후 1시경) 막 테이블에 마주 앉는 순간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나 처음으로 차를 같이 마시기 위하여 다방으로 와 이렇게 마주 앉으니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몰랐었다.
테이블에 앉는 순간 다방레지가 다가와 차 뭐하겠느냐고 묻기에 서로 다른 원하는 차를 시켰다. 그리고 나서 우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내가 먼저 그 동안 무엇을 하였으며 현재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졸업하고 1년쯤은 시골집에서 전주에 왔다갔다하면서 세월을 보낸 후 그 이듬해는 서울로 올라가 재수를 하였으며 다시 그 이듬해 열심히 공부한 탓인지는 모르나 서울시 연합고사에 합격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한다.
거기서 뼈저리게 느꼈던 재수생 시절을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 전교에서 차석으로 졸업을 하였다 한다. 이렇게 공부는 열심히 해서 정규대학에 갈 실력을 갖추었는데도 가정형편이 곤란하여 정규대학에 가지 못하고 부득이 방송통신대학을 입학하여 현재 2학년 졸업반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또 다시 2학년 졸업반이면 언제 졸업을 하냐고 물으니 paper에 적어 준다하여 memo paper를 찾기에 내 봉투에서 연습지(16절지)를 한 장꺼내 pen과 함께 주니 그 memo paper에다 82년 2월 28일 서울대학교 본부라고 적은 후 다시 그 밑에다 서울 주소를 적어주며 약도도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려주었다.
이렇게 그 애가 먼저 이야기 한 후 나에게 호열이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기에 기계공고를 졸업한 후 실력이 약간 부족해서 공전을 입학하여 2년동안 공부를 마친 후 졸업을 하고 원광대학교에 편입학하여 작년에 3학년을 마친 후 올해 군대문제로 휴학을 하고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며 있다가 며칠 전 裡里로와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고 대답하였다. 그 애는 다시 그럼 군대문제는 어떻게 되었냐고 묻기에 완전히 해결하고 민방위로 빠져 엊그제 4시간의 민방위교육훈련을 처음으로 받았다고 대답하였더니 「잘했네.」 「행운아네.」 하며 기뻐하였다.
이렇게 하여 서로의 안부의 이야기를 끝내고 있노라니 목이 타 우린 다시 요구르트 1병씩을 시켜 마신 후 대화는 계속 되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하여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서로가 바쁘지 않다 하며 헤어질 줄 모르고 이야기하는 그땐 이 얘도 나도 졸업 후 동창생을 만나던 중 제일 흥미롭고 보람됐다고 생각하였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보니 오후 5時가 되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끊어질 줄 몰라서 다방에 약간 미안한 점이 들기에 우린 일어나 OB베어로 가서 500cc 맥주 1잔씩만 하고 헤어지자고 그 얘한테 하니까 그 얘는 언니집에 갈려니까 맥주를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서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애의 이야기하는 중의 안면에는 그리 싫지도 않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어 다시 권유를 하니 그렇게 한다고 하면서 우린 다방을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OB베어를 찾아야 만 했다. 또다시 좁은 읍내에서 지리가 서툴러 약간 헤메이다 우린 생맥주 집을 찾아냈다. 조용하고 아무손님도 없었다. 그래서 들어가 중앙우측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맥주 500cc 2잔을 가지고 와서 마시며 아직도 이야기는 태산과 같다는 듯이 우리들의 대화는 계속 되었다.
앞으로의 점선이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통신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중매를 서겠다는 사람이 많으니 결혼하고 배우자가 허락만 해 준다면 계속 공부를 더 할 예정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가 호열이는 앞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묻기에 난 내년에 복학을 하여 1년 공부를 하여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고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한 후 외국을 갈 예정이라고 대답한 후 그런데 나는 원체 머리가 멍청해서 잘 될지는 모르겠네. 그런데 여태까지의 내가 마음먹은 것은 모두 이루어졌다고 덛부처 말하였더니 그 얘가 말하기를 그런 꿈을 갖고 있으면서 열심히 하면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심각히 대답해줬다.
그땐 내 자신에 큰 용기가 생기는 듯 하고 뭔가 가슴에 찌릇함과 반성을 느꼈다. 이야기가 끝난 후 다방에서 하지 못하였던, 또 이야기는 하였는데 살짝 얕게 한 이야기들을 좀더 깊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는데 역시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르고 있었다. 중학교때 숨어 과외 수업하던 일!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의 소식들! 친구들의 안부! 등등을 서로 묻고 있었다. 그때 맥주는 다 마시고 빈 잔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잔을 같이 자하고 하니 그 애는 않는다며 나 혼자만을 500cc 1잔을 다시 시켜놓고 계속 이야기를 하였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이 쌓이고 쌓이었는지 몰라도 내 맥주 잔이 다시 빈지도 모르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7시였다. 그래서 그 애와 서로 합의하여 1잔씩의 맥주를 다시 시켜 마신 후 그 맥주 집을 나가기로 하였다. 시킨 맥주를 다 마신 후 그 맥주 집을 나와 옆 주차장에 와보니 그 애가 탈 차가 없었다. 그래서 삼례에서 와리가는 시내버스가 몇시쯤 있느냐고 삼례-봉동-전주 시내버스 기사님께 물으니 2시간이나 기다려야 막차가 온다고 하였다.
난 속으로 미안해서 그 애한테 찾아가 9시에 막차가 있다고 알려준 후 나를 만나 언니 집을 밤늦게 가게 돼 미안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괜찮다며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 반문하며 이 대합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금방 9시가 될 것이니 걱정말고 호열이나 빨리 裡里를 가라고 하였다. 그러는 사이 裡里行 시내버스가 도착하여 난 그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시내버스가 떠나기 전 버스 창넘어 그 애를 찾아보니 처음에 만난 그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고 있었다.
분명 그애는 책을 보는 자세가 몸에 베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裡里에 다 오면서까지 그리고 글을 쓰면서까지도 그 애와의 삼례에서의 대화를 되새겨 보니 분명히 우린 구김살이 없었으며 숨김 역시 없었다. 그리고 보람되고 유익한 대화였다. 정말 난 오늘 그 애와의 대화로 중학생도 되었고 대학생도 되었고 기혼남자도 되었고, 친구도 되었고, 그리고 또 영원한 마음의 벗도 되었었다.
< 최호열 / 시인, 포천신문사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