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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걸/ 수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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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은 끝이 아니다. 알싸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정신이 바짝 깨어난다. 계절은 언제나 가장 먼저 숨으로 말을 건다. 아침이면 서릿발에 얼어붙은 잔디가 화살촉처럼 은빛 날을 세우고, 앞산의 숲은 고적하게 야위어 있다. 잎을 내려놓은 나무들은 마치 오래 참아온 고백을 멈춘 사람들처럼 앙상하다. 겨울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가난한 숲. 그 소슬한 풍경 사이로 밤이면 별들이 들꽃처럼 피어난다. 군더더기 없는 하늘 아래에서 세상은 잠시 숨을 고른다.
내가 세상에 처음 온 날도 밤새 하얗게 눈이 쌓였다고 한다. 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포근해진다. 눈은 기억을 덮는 이불처럼, 차갑지만 따뜻하다. 내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서 그런지 겨울이 오면 두툼한 옷부터 챙긴다. 그럼에도 겨울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따뜻함과 아늑함이 가장 분명해지는 계절이 겨울이라고 믿기에 그렇다. 바깥의 냉기가 매서울수록 안쪽의 온기는 또렷해진다. 겨울은 생명을 잉태하는 자연의 자궁이다. 봄과 여름, 가을이 다시 살아가기 위해 숨을 모으는 시간이다.
인생에도 그런 겨울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실과 마주하거나, 감당하기 벅찬 한파 속에 홀로 서야 할 때가 있다. 길은 얼어붙고 발걸음은 자주 미끄러진다. 그러나 겨울이기에 견뎌야 한다.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싹을 키우기 위해서는 혹독한 시간이 필요하다. 겨울은 주저앉으라고 등을 떠미는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일어설 힘을 안으로 축적하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그 말을 알아듣는 일은 오직 견뎌본 자의 몫이다.
이른 아침, 바닷가에 섰다. 해변을 따라 겨울 칼바람을 끌어안고 걷는다. 바다는 제 말을 하고, 나는 내 말을 한다. 말은 서로 흩어지지만, 어딘가에서 은근히 이어진다. 얼음처럼 차가운 파도와 바람, 그 소리가 아이러니하게도 포근하다. 반겨주듯 출렁이는 파도는 겉으로는 겨울의 멋을 부리지만, 그 안에는 고통을 통과한 성숙이 숨어 있다. 그래서 겨울의 바다는 더 깊다. 갈매기 울음이 허공을 가르고, 외딴섬을 등진 바람이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라며 일기예보는 눈 소식을 피해 갔다. 해가 질 녘 창밖을 보니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자박자박 떨어지는 빗소리는 음악처럼 감미롭다. 어떤 순간에는 흥겹고, 또 어떤 순간에는 서글픈 외로움의 운율이 되어 귓가를 맴돈다. 창가에 이마를 대고 빗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속 어딘가가 천천히 풀린다. 가만히 「빗방울 전주곡」을 떠올린다. 고독은 때로 가장 맑은 음표가 된다.
겨울날은 쓸쓸하고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차오르기 전의 침묵이다. 나무는 잎을 내려놓은 대신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바다는 차가워진 만큼 단단해진다. 나 또한 겨울을 지나며 말수를 줄이고, 마음의 중심을 낮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속에서 삶은 가장 바쁘게 자라고 있다. 겨울은 끝이 아니다. 다시 피어날 날을 위해, 세상이 조용히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 공모전 우수상 수상.(2021) 제6회 대한민국 다문화 인권문학상 공모전 동상 수상.(2025)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 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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