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가을이 스며든다. 높아진 하늘과 한껏 깊어진 바람, 서서히 물드는 단풍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잎이 떨어지는 풍경은 생의 한 장면을 닮았다. 가지에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 생은 끝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의 예고다. 그런 가을의 풍경 앞에서 문득 묻게 된다.
“나는 과연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동안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위해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달려왔다. 이제 조금은 느슨해진 어깨 위로 가을 햇살이 내려앉는다. 결실의 계절이라 하지만, 내 삶 속에는 풍요로움보다 고요함이 더 깊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받아들이고, 비워야 할 것은 비우며 살아간다. 그것이야말로 이 가을이 내게 준 선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요즘 뉴스를 보면 정치의 무대에서는 가을 하늘처럼 투명해야 할 진실이 구름에 가려졌고, 권력은 봉사의 자리가 아니라 군림의 자리로 변질된 착각이 든다. 서로를 향해 내뱉는 말들은 겨울바람보다 차갑고 그 속에서 믿음과 사랑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정치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깊숙이 스며 있다.
SNS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웃고, 성취하며, 마치 끝없는 풍요 속에 사는 듯 연출한다. 그러나 실제 삶은 어떠한가. 외로움과 불안, 치열한 경쟁과 고단한 하루가 우리를 지배한다. 작은 화면 속 화려한 풍경은 그저 가을 단풍처럼 잠시 반짝이는 빛깔일 뿐, 곧 낙엽처럼 사라지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착한 경영’을 말하며 기부와 봉사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서는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쓰고 환경을 파괴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일명 노란 봉투 법이 나왔을까. 이 시간에도 탐욕의 얼굴은 화려한 광고와 포장 뒤에 숨어 마치 가을 열매처럼 풍성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다.
세대 간에도 각기 다른 얼굴이 있다. 청년들은 자유롭고 당당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취업난과 경쟁 속에 지쳐 있다. 기성세대는 안정된 듯 보이지만, 불안한 노후와 고독을 감추고 있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니, 세대의 간극은 점점 더 깊어진다.
작년 겨울, 긴 병원 생활에서 깨달았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용기를 내어 맞서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을. 허영과 욕망의 얼굴은 우리를 더 화려하게 보이지만 결국 삶을 무겁게 짓누른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맨얼굴로 서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가을 하늘처럼 맑아질 수 있다. 얼굴을 바꾸는 일은 두렵다.
하지만 떨어지는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 새 생명의 거름이 되듯,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상처투성이의 맨얼굴일지라도, 그 얼굴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고, 더 진실하게 만든다.
결국 인생은 가을과 닮았다. 화려한 단풍처럼 수많은 얼굴을 하고 살다가, 어느 순간 낙엽처럼 벗겨지고 떨어져 본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얼굴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리고 언제쯤 그 허망한 얼굴을 벗고 진짜 맨얼굴로 설 것인가.” 그 물음에 정직하게 답하는 순간,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우아해질 것이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얼굴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맨얼굴로 숨 쉬고 웃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단단한 방법이 아닐까.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그린에세이 작가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공모 우수상 수상.(2021).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2019)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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