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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걸/ 수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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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가을만큼은 내 마음을 붙잡는다. 아침 햇살이 동쪽 하늘을 가르며 어둠을 걷어내고, 밤새 내린 이슬 위로 보석 같은 빛을 흩뿌린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 인생의 가을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한때, 하지만 그 속에 숨은 가장 귀한 것들은 정작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고마움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공기는 무색무취로 생명을 지탱하고, 바람은 형체 없이 스쳐 가며 마음을 맑힌다. 희망과 행복 역시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것이 없다면 삶은 곧바로 절망으로 기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들을 너무도 쉽게 당연한 듯 흘려보낸다.
현직에 몸담고 있던 어느 날, 신현림 작가의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을 읽은 적이 있다. 서른 가지 소박한 약속들이 담긴 책이었다. 가족과 여행하기, 부모님과 맛집 찾아가기, 영화관에서 웃고 울기, 아버지와 단둘이 목욕탕에 가기…. 글자만 보면 사소하고 쉬운 듯했으나, 끝내 그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내일로 미루어도 괜찮다고 여겼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 ‘언제든’을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점점 허리가 굽어 잠시 기억을 잃으셨던 시간도 있었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시며 병세가 깊어졌지만, 객지에서 직장 탓만 하며 말로만 위로했다. 평생 손이 거칠었던 아버지, 그 노후만큼은 편안해지시길 바랐으나 그 바람은 끝내 사치로 남았다.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그것을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부모님이 떠난 뒤에야 그 말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후회하지 말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니 참으로 어리석은 자식이다.
뒤돌아보면 내가 잘난 줄 알았던 것도 부모님이 남겨주신 보이지 않는 선물 덕분이었다. 그것은 재산도, 화려한 학벌도 아니었다. 생각한 것을 곧 실행에 옮기는 곧은 성격, 그리고 어디서든 책임을 다하는 부지런함. 눈에 보이지 않기에 쉽게 잊었지만, 그것은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귀한 유산이었다. 이제야 그 가치를 새삼 깨닫는다.
이번 주 토요일, 천호 성지 봉안 경당으로 향한다. 산 좋고 물 맑은 그곳은 부모님의 삶이 머물던 자리이자 내 뿌리가 깊게 박힌 터전이다. 고향의 길을 걸으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어린 날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어머니의 손길과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바람결에 스민다.
밤이 되면 고향 하늘은 별빛으로 가득했다. 수많은 별이 눈처럼 반짝이며 내려다본다. 그 별빛을 바라보면서 깨달았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것들의 의미를. 부모님의 마음도, 그분들이 남겨주신 보이지 않는 선물도, 희망과 행복도, 모두 별빛처럼 손에 잡히지 않으나 언제나 머리 위에서 길을 밝혀주고 있다.
한동안 마음의 눈이 어두워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지만 이제는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고마움에 가치를 부여하며 마음의 눈을 더욱 밝히고 싶다. 고향 밤하늘의 별빛은 그 다짐을 고요히 지켜보고 있으리라.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그린에세이 작가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공모 우수상 수상.(2021).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2019)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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