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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의 플러스에세이 5] 작은 위로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08월 19일
< 김종걸/ 수필작가 >

창가에 빛의 산란이 눈부시다. 창밖의 수목들은 파릇한 몸을 비비며 가을을 준비하고, 가지마다 잎새들의 분주함이 감돈다. 나무 밑의 낙엽들은 흙덩이를 덮어버리며 조용한 추억을 만든다. 가을이 오는 길목엔 결실의 경이로움이 고요히 차오른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작년 늦가을에 머물러 있다. 그날 에스컬레이터에서 미끄러지며 골절된 왼쪽 다리는 여전히 회복 중이다. 입원 초기엔 놀란 목소리들이 연이어 전화를 걸어왔지만, 지금은 오래된 친구 전화만이 정기적으로 울린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회복 중이야. 아직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진받고 있어.” “그래, 이젠 모든 일이 잘될 거야. 곧 완전히 회복될 거야. 또한 올해 11월 수술은 별거 아닐 거야.” 친구는 무뚝뚝했다. 따뜻한 말을 곧잘 꺼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날 그의 말은 내게 놀랍도록 부드럽고 희망적이었다. 그가 십 년 전 당했던 사고를 말하며, 곧 괜찮아질 거라 했을 때, 그 말이 지금의 내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느꼈지만... 어쩌면 더 진심 같았다. 친구는 아픈 내 현실 대신 멀리 있는 건너편 희망을 건네주었다. 당시 병원에 머무는 동안 여러 지인이 찾아왔다.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들은 어쩌면 상투적일 수도 있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았으니까 좀 쉬라는 뜻이야.” “액땜했네. 마음 편히 가져. 이 정도면 다행이지.” “그래도 수술 잘 돼서 정말 다행이야. 곧 나을 거야.” 처음엔 그 ‘다행’이라는 말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그 말의 본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행복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더 큰 불행을 막아줬다는 조용한 고백이랄까. 어떤 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머리를 다쳐 의식을 잃기도 했다면서 다리밖에 안 다쳤으니. 그 말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싹텄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지금은 괜찮아. 거의 다 회복되어 가고 있어.”

요즘 사소한 것들에서 작은 위로를 얻는다. 누군가의 염려 한마디에 눈시울이 젖고, 따뜻한 눈빛 하나에 마음이 녹는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조금씩 여려지고, 더 쉽게 감사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날마다 만나도 타인이고, 어떤 사람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도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자리한 지인, 친구, 가족은 내 삶의 작은 위로였다. 세월은 산맥처럼 겹겹이 이어지고, 인연은 머물렀다가 반드시 떠난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인생의 중반쯤 와서야 깨닫는다.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남은 시간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문득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행복할 때보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하다고 할 때, 그 행복의 질량은 더 크다.” 이제는 안다. 내게 말없이 빛을 건네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 빛이 때로는 말보다 더 깊이 나를 감쌌다는 것을...

◀ 작가 김종걸 ▶
○ 격 월간지《그린에세이》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그린에세이 작가회 회원
○ 수필집
“울어도 괜찮아”(2024), “언론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명수필”(2022,공저)
○ 수상
제17회 공무원문예대전(현, 공직문학상)수필부문 우수, 안전행정부 장관상 수상.(2014)
제17회,19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부문 우수, 경찰청장상 수상.(2016, 2018)
제4회 경기한국수필가협회 수필공모 우수상 수상.(2021).
대통령 녹조 근정 훈장 수상.(2019)
○ 현장경찰로 34년 근무, 경정(警正)으로 퇴직하였다.
재직 중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 근무우수로 경찰청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서울, 경기지방경찰청장 표창 등 다수 수상하였다.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5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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