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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 에세이] "부르투스, 너 마저!" 에 대한 변명

시저를 쓰러뜨린 것은 시저보다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10월 01일

셰익스피어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연설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부루투스가 시저를 살해한 후 로마시민들에게 행한 것이라고 추천하리라.

시저는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공적을 이용해서 로마의 황제로 등극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원로원에서는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 부루투스를 중심으로 시저의 살해를 모의한 후 전격적으로 시저를 칼로 찌르고 만다.

사실 시저는 전도 유망한 부루투스를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였고, 어쩌면 자신의 아들처럼 애지중지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항상 의식하였지만 설마 부루투스가 자신을 찌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는 살해를 모의하였던 자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사정없이 단도로 난도질을 할 때, 부루투스가 함께 가담한 것을 보고 한마디 절망의 말을 던진다.

“부루투스 너 마저!”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로마시민들에게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무언가 해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루투스는 명쾌한 논리를 전달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리라.

그는 우선 시저를 개인적으로 증오하여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밝힌다.

그는 군중들에게 이성을 지켜줄 것을 당부하면서 “이 군중 속에 누구 시저와 친한 분이 있다면, 그분께 나는 이렇게 말하겠소. 이 부루투스가 시저를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남에게 못지 않았노라고. 그렇다면 왜 부루투스는 시저를 쓰러뜨렸는가 하고 반문하겠지만 그건 내가 시저를 덜 사랑한 탓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한 탓이라고 대답하리다”고 말한다.

시저를 사랑하지만 로마를 사랑한다는 더 큰 대의를 위해서 개인적인 감정은 저버렸다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든지, 자신의 몸을 바치는 행위는 납득이 가지만. 사랑의 댓가를 죽음으로 돌리는 것은 어쩐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부루투스의 말이 엄청난 패러독스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독재를 꾀하는 시저를 증오하기 때문에 죽였노라고 밝히는 것이 솔직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시저의 영웅적인 전적이 시민들과 관객들의 가슴속에 깊게 새겨져 있어서일까.

부루투스는 자신의 말이 가지는 모순을 의식하기 때문에 사랑의 패러독스를 녹이는 설득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시민들에게 시저의 황제등극이 가져올 파란을 더욱 더 강조해서 주지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인간이 누려야할 자유라는 가치가 시저에 의해서 사라질 위기상황이었다고 환기시킨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여러분은 시저가 죽고 만인이 자유인으로 사는 것 보다도 시저 혼자 살고 나머지는 다 노예로서 죽기를 원하는가.”라고 다그친다.

시저로 인해서 노예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논리적인 비약 같다.

시저가 수많은 원정에서 승리함으로써 로마가 누릴 수 있었던 풍요와 안보적 안정 그리고 로마의 국제적 위상은 왜 거론하지 않는 것인가.

생명을 걸고 로마를 위해서 싸운 시저의 사랑이 부루투스의 것보다 부족했다는 것인가.

부루투스는 로마시민들이 시저의 공적을 찬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부루투스는 피부로 잘 느낄 수 없는 자유라는 가치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가장 치욕적으로 느끼는 노예라는 개념을 의식하게 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로마시민들은 시저가 전쟁 후 끌고 온 수많은 노예들을 부리고 있었고, 노예들의 비참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루투스가 시저의 살인에 대해 내세우는 명분은 시저가 가져온 물질적 풍요보다도 자유라는 추상적 가치이다.

시저가 로마에게 선사한 물질적 풍요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로마가 더 지켜야할 자존심은 로마시민들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요즈음 한국의 근대화에 대해 평가하면서 국민들을 노예의 상태로 내몰면서 산업화를 추진했던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 재평가해야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적 풍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유보되어도 된다는 논리이다.

과연 물질적 가치가 자유나 민주주의라는 인권적 가치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배고픈 인간보다 배부른 돼지를 차라리 선택하겠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군사독재를 거쳐온 우리 국민들이 유월항쟁을 통해서 자유라는 추상적 가치가 얼마나 우리들의 가슴을 떨게 했던가를 생각해야 한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작통권을 얼마든지 유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루투스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이중에 누구 스스로 노예의 처지를 원할 만큼 비열한 인간이 있소? 있다면 나서시오 그 사람에게는 내가 잘못을 저질렀소. 로마인이 되기를 싫어할 만큼 몽매한 사람이 누구요? 있다면 나서시오. 그 사람에게는 내가 잘못을 저질렀소. 조국을 사랑하지 않을 만큼 비열한 자가 누구요. 있다면 나서시오. 그 사람에게는 내가 잘못을 저질렀소.” 부루투스가 의미하는 로마는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로마인 것이다.

동북공정이라는 해괴한 역사왜곡을 당하고 있는 우리들은 ‘자주’나 ‘주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 않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서둘러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강대국에 기대어서 언제까지라도 우리들의 안보를 유지해야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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