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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론 3

대진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장 윤 수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7월 31일

 또한 1930년대 소설에서는 교육자의 갈등이 많이 다루어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진오의 <김강사와 T 교수>의 김만필, 이태준의 <실낙원 이야기>와 <패강냉>의 인물들이다.


김만필은 죽음의 시간 속에서 박제화되는 지식인-교육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실낙원 등의 교육자들은 추방당하고, 밀려나는 상실의 슬픔을 겪는다.


이들은 존재의 근거를 유린당하고 박해당하는 모습을 보인다.


"낙원"과 대동강의 옛 이름인 "패강", 유구한 민족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근원에서 밀려나는 유형자들이다.


그들이 쫓겨나면서 뒤돌아보는, 원초적인 삶의 자리는 시체처럼 차가운 죽음의 공간, 곧 폐허가 되고 있다.


이 원초적인 공간에서 추방되는 지식인-교육자의 의미는 더욱 증폭되는 비극적인 의미와 폭력성을 띤다.


민족의 근원적인 정신의 뿌리에 가해지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최명익의 <역설>에서 교육자는 상동병자(常動病者)와 고총 속 옴두꺼비, 그리고 이 두 모티프를 연결하는 "길"로 표상되는 삶을 산다.


 


그것은 길을 따라 반복하는, 의식 소멸의 기계적인 진자 운동이며, 무덤 속 옴두꺼비와 같은 칩거 생활이다.


 


이 길의 두 극단에 놓인 상동병자와 고총 속 옴두꺼비 모티프, 그 중간의 소나무 모형 상징, 이들을 둘러싼 목책 안 구조가 내면화된 것이 주인공 문일의 의식구조의 지도가 된다.


 


이 의식구조의 행위화가 문일의 삶이다. 문일은 교장이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식민지 구조의 고총화에 가담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또한 옴두꺼비의 동면과 동면의 꿈을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진자 운동과 옴두꺼비의 삶은 소나무 모형 상징을 통해 군국주의의 등화관제 상황 속의 한국인들의 삶으로 확대 복사되는데, 이러한 삶에도 하나의 꿈이 있다.


 


그것은 무덤 속을 벗어나는 꿈이다.


 


이것이 지식인 문일의 꿈이요, 꿈꾸는 지식인의 삶이다.


 


이것은 지식인 문일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 방식이다.


 


이러한 존재 방식에는 1930 년대 한국인의 삶의 현실적 조건을 인식한 상황의식과 비판적 지성이 내재해 있다.


 


1920 년대 지식인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1930년대 지식인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사이의 인식의 공통점과 차이점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세전>의 주인공 이인화가 구더기가 득시글거리는 공동묘지를 보았다면, <역설>의 주인공 김문일은 옴두꺼비가 사는 고총을 본 것이다.


 


학생 이인화가 졸업을 위해 동경으로 되돌아갔다면, 교사 김문일은 고총 속에 남아 봄을 꿈꾸고자 한다.


 


모두 죽음의 공간을 살아내려는 삶의 실존적인 자각과 그 결단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학생다운 삶의 지속적인 실천이라면, 후자는 교육자 지식인의 실천적 면모이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위와 같은 지식인은 전문가 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을 모두 지식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명개화와 교육구국의 기치를 내걸고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 교육을 떠났고, 이들이 돌아와 교육자와 신문기자, 시인.소설가 등의 전문직에 종사하지만, 이들을 일러 모두 참다운 지식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청준에 의하면, 지식인은 전문가들 중 그들의 전공 분야에서 인간과 우주의 보편적 질서에 이른 극소수의 사람이다.


 


어떤 분야든 전공을 통해 전문가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동일한 보편성에 도달하게 된다.


 


그는 그 자신의 전공 분야뿐 아니라, 그가 속하고 있는 사회 공동체 전반에 대해 그 공동체가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에 상도하게 되며, 인간과 세계의 전반적 질서까지 함께 궁구하는 지식인, 새이념 창조자로서의 지식인이 된다.(<조율사>, 열림원, 1998, 72-73)


 


그러나 이 경우에도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가령 이광수의『무정(無情)』의 주인공 이형식의 경우는 어떤가?


 


그는 교육을 그가 사는 시대의 구심적 가치로, 또는 구원의 빛으로 절대화하는 인물이다.


 


<무정>은 근대적 자아로서의 개아의식이 아니라, 시대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자아로서의 "우리 의식"을 자각하고 그 존재론적 인식의 궁극에서 교육구국이라는 공동체적 새이념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교육구국의 새이념은 민족적 위기를 외면하고 현실을 호도한 반역사주의의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광수가 결국 반민족적 친일 행각으로 치닫고 마침내 비참한 추락의 말로를 보여주었던 것도 이형식에서부터 그 경사각이 예정된, 민족지도자연했던 한 사이비 지식인의 필연적인 정신적 파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수뿐만 아니라 일본 유학을 다녀왔던 많은 엘리트들이 좀처럼 지식인상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식민지 조선의 일제 통치에 대하여 매우 어정쩡한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통치가 근본적인 비이성에 입각한 지배임을 인식하면서도 그 강압적인 힘의 논리에 순응하는 아리송한 태도로 일관했음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엘리트들은 문명개화와 교육구국의 거창한 명분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고, 일본제국주의의 교육을 통해 선진 문명과 지식을 습득하고 돌아왔지만 식민지 조국에서 그들이 한 일이란 총독 정치에 기생함으로써 [일제의 수혜자 또는 각종의 관료적 경제적 출세주의자가 되거나, 외면적인 문화의 습득에 "유쾌한 자랑을 느낀 문화주의자"로 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화주의자들 또한 그들이 택한 삶이 조선 민족 사회 전체가 마땅히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그릇된 신념"을 만들어내야 했고, 그리하여 근본적으로 식민주의라는 비이성에 봉사했던(김우창,『궁핍한 시대의 시인』) 사이비 지식인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사정은 작금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교수의 90% 이상이 미국 박사학위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를 보는 눈이 미국이라는 하나의 렌즈를 통해서만 보는 데 길들여져 어느새 우리는 우리 눈이 이상해지고 외눈박이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된 한국 지식인의 정신적 장애를 한탄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리하여 미국은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들을 일방적으로 내리거나 강요하고, 어정쩡한 지식 발쇠꾼들이 한국 지식사회 도처에 깔려있으니까 이제는 마음대로 한국을 억눌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미제 지식인들은 그것을 우리가 선택의 여지없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고 또 세계화가 곧 미국화이기에 미국과의 FTA를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식으로 강변하는 미국의 대변자들이 많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단하고 선택할 여지도 없이 음험하게 넘실거리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곤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빌미로 일본은 북한 선제공격을 노골화하는 섬뜩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반도에 참혹한 재앙과 저주가 될지도 모르는 미.일 주도의 음험한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다.


 


한국 지식인들은 한국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미국적 독선과 오만한 사유에 유독 맥을 못 추는 외눈박이의 맹목성을 드러낸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와 FTA가 한국 사회 전체가 마땅히 가야 할 방향임을 의심의 여지없이 자명한 진실로, 또는 올바른 신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우려의 하나는 황폐화된 지식사회와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다.


 


역사적으로 지식인은 사회 정의와 양심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 보루가 무너지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환멸과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지 오래다.


 


이 때문에 정치계나 재계, 법조계의 비리가 폭로됐을 때도 사람들은 결코 놀라워하지도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사조에서 지식인은 자신을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데 급급하다 못해 이제는 자본과 권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위가 되어 그들의 <집지키는 개>가 되어버렸다.


 


자본은 언론을 장악하고 국가요직에 그들의 장학생들을 속속들이 포진시켰다.


 


그들을 솎아내는 일에 검찰은 한없이 미적거리다가 아예 깔아뭉개기에 이르렀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제 살을 도려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재벌권력은 국가권력을 통째로 접수할 음모를 한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시도해왔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속수무책으로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대형 법조 비리는 주기적으로 계속 터진다.


 


 그들의 정신도 영혼도 다 매수되고 물질화 되어서 죄의 있고 없음이 돈의 없고 있음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지식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군집하고 있는 곳이다.


 


그 지식인들의 생태학은 어떤가?


 


대진대학교는 작년(2005년)에 교수협의회를 중심으로 "학교 바로 세우기 운동"을 펼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필자는 지식인들의 그 적나라한 행태에 대해 참으로 귀한, 생생한 경험을 했다.


 


직위 해제된 교협회장의 목을 치는 데 교수들이 서슴없이 나서는 모양을 보았고, 그들과 한통속으로 희희낙락하며 목 잘린 장수를 조롱하고 침을 뱉으며 모욕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던 자들이 어떻게 권력에 빌붙어 이득을 챙기는지도 목도했다.


 


그 절절한 생태학을 말하기 위해서는 보다 긴 글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사회 정의와 양심의 마지막 보루에 대한 희망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한, 진실 또한 스스로 그 빛을 발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끝)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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