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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論

대진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장 윤 수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7월 12일


장 윤 수


몇 달 전부터 포천신문에는"포천사회 지식인"이라는 타이틀로 열전 비슷한 형태의 기획기사가 연재되고 있다.


필자도 그 기획물에 실을 원고 청탁을 전화로 받았으나 곤혹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정중하게 고사한 바 있다.


우선 지식인의 속성과 생태에 대한 평소의 회의가 의식의 밑바닥에서부터 꼬물거렸고, 과연 이 시대 지식인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야 할까,라는 개념적인 의문이 암운처럼 꼬리를 물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의문에 대한 범박한 규범이나 조건들에 대한 최소한의 자가 성찰 없이 자칭 지식인임을 내세우고 지면에 버젓이 얼굴을 내미는 것은 참다운 지식인들에게 어떤 누가 되고 욕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교수니까 당연히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자의건 타의건 그 지식인 열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의 소외감이나 섭섭함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에 굶주린 지식인들의 반지빠른 행태를 넌더리가 나도록 자주 접하고 있거니와 "한국은 죽은 지식인들이 환생하여 백주에 횡행하고 있는가?"



몇 년 전부터 유력 일간지와 방송국에서 교수들에게 인물 정보를 요구하는 문건을 거듭해서 보내와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일이 있었다.

우선 개인 정보 누설이 염려되는 상황이 아닌가.

또 해방 이후 언론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군림하면서 왕국의 신민으로 조직화하려는 의도가 너무 뻔해 보여 순순히 응할 수가 없었다.

자진해서 그들 왕국 못지 않은 부와 권력을 구축해 왔는가를 익히 보아왔던 터라, 지식인 사회를 그들 왕국의 신민으로 조직화하려는 의도가 너무 뻔해 보여 순순히 응할 수가 없었다.

자진해서 그들 왕국의 충직한 백성이 되는 것을 자랑과 영광으로 여길 수 없는 반골 기질이 꿈틀거리는 한편, 왕국 백성이 되기를 거부하는 데서 오는 막강한 권력의 비호와 그 영광의 과실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소외감과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어서 이래저래 속 좁은 샌님의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2006년5월15일은 여전히 스승의 날이라고 한다.

스승은 없는데 스승의 날이라니! 이것이 나만의 자괴감일가.

곱지 않은 시선, 흘겨보는 눈들이 천지에 가득하다는 것을 어찌 의식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억지 춘향이가 되어 바늘방석에 앉은 듯 참으로 불편하고 그 민망함을 뻔뻔스럽게 견뎌야 하는 날이어서 술로라도 그 따가운 눈총들을 잊고 망각속에 하루쯤 훌쩍 건너 뛰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2006년5월15일 "솔아솔아 푸른 솔아","저 꽃이 불편하다"로 유명한 박영근(1958~2006)시인이 스스로 못난 세상을 버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는 날이다.


 


그는 지난 1980년대 "취업공고판 앞에서"(청사, 1984)란 시집으로 이 땅에 현장 노동자 시인이 끌고 가는 "노동문학"의 뿌리를 심은 일세대였다.


 


그 뒤 노동자 출신 박노해와 백무산, 이소리, 김해화, 김기홍 등 시와 노동을 하나로 산 시인군의 출수를 보았으나 그는 이 험난한 세상과의 끈질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채 인생의 어느 대목에선가 스스로 생명의 끈을 툭 놓아버린 "소극적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끝없는 안타까움을 곱씹게 하는 우리 시대 드문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고작 고등학교 일학년을 다니다 중퇴한 학력이지만 누구도 그를 참다운 지식인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나는 문예사조를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서구에서 "지식인"이라고 불리어진 특수 계층이 등장한 것은 고전주의가 낭만주의로 교체되고 작가에 대한 페트론 제도가 산업사회로의 진입과 함께 상업출판제도로 바뀐, 시장제도의 출현과 때를 같이했던 것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문학을 통해 지식인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해했다.


 


페트론 제도에서 작가는 후원자들인 독자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그들의 비판을 수용하고 그들의 변덕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작가는 소속감을 가지고 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제도에 있어서 작가는 시장에서의 성공에 따른 독립성과 사회적 지위가 확보될 수 있었으나, 얼굴 없는 독자들의 변덕과 선택에 작가적인 운명을 내맡기고 비인격적인 제도의 움직임에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하여 비인간적인 시장 제도에 대한 작가들의 반동과 함께 일반 대중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중에 대한 작가적인 불만은 19시게 초에는 매우 첨예해져서 키츠는 "대중에 대해서는 조금도 겸허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셸리는 우매한 군중으로부터 아무 충고도 듣지 말며, 현대의 비평은 우둔함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므로 시인은 그것과 싸워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워즈워드 또한 시장에서의 자신의 인기도를 거부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예술이 시장법칙에 예속되고, 다른 상품의 생산과 마찬가지로 수요/공급의 조건에 지배되는 특수한 형태의 생산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아담 스미스는 최초로 지식인을 정의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풍요하고 상업적인 사회에서는 생각하거나 사유하는 것이 다른 직업처럼 하나의 특수한 직업이 되는데, 이것은 노동하는 대다수 민중들이 소유하고 있는 생각과 이성을 일반 대중에게 공급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


 


이것이 1820년대 이후 "지식인"이라고 불리어지게 된 특수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규정으로서 중요하다.


 


이는 또한 예술의 전문화라는 새로운 조건에 대한 설명이기도 한데, 이제 예술품은, 아담 스미스의 지식인에 관한 설명과 같이, 새로운 시장을 구성하고 시장에 대비 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구두나 양말과 마찬가지로 구입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의 전문화는 필연적으로 상업적 출판 제도에서 나왔다.


 


특히 소설은 급속히 상품화가 진행되었다.


 


문학 형태로서의 근대소설의 역사는 정확히 이 새로운 조건에 따른, 산업화에 대응한 발생학과 진화의 역사를 갖고 있다.


 


시에 있어서의 영향도 분명한데, 시가 시장관계로부터 받은 충격은 매우 가혹했다.


 


블레이크는 아무도 사러 오지 않는 황량한 시장에서 고통 받다 못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상품을 엄청난 값을 받고 파는 자가 위대한 천재로 생각되며, 무지한 직공들의 손으로 예술을 제조케 하는 독점 상인의 이해관계"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예술이 구현하는 상상력은 절대로 상품이 아니라 "진정하고 불변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의 재현"이었다.


 


당대의 사회와 그 사회가 조장하는 삶의 질이 인간적으로 합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관찰되고 또 비난되었던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였다.

가치의 표준으로서의 "일반대중"과 "인기도"를 거부한 것과 나란히 하여 문학이 하나의 상행위가 돼 버렸다는 불평이 점증했다.


 


여기서 우중(愚衆)과 "교양 있는 소수"가 구별되고, "문화"라는 개념이 "시장"의 반대 명제로 등장했다.


 


그와 함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사고 체계가 이루어졌다.


 


그 체계의 하나는 "상상적 진실"에 이르는 수단으로서의 예술 활동의 특수한 성질이 강조되었고, 다른 하나는 특수한 인간으로서의 예술가, 곧 천재의 개념이 강조되었다.


 


시장을 위한 또 하나의 상품 생산자로서 예술가가 묘사되고 있던 때에 예술가 자신은 특수한 재능을 지닌 사람, 또는 보통 사람들의삶을 이끌어 주는 빛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묘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산업 문명을 향해 나아가는 사회의 발전이 위협하거나 파괴한다고 느껴지던 어떤 인간적 가치, 능력, 에너지가 예술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직업상의 항변적인 요소뿐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산업 문명이 인간을 파괴하고 비인간화하며 인간 상실에 이르게 하는 재앙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항거하는 지식인의 저항이었다.


 


산업 문명에 의한 어마어마한 변화가 점차로 더욱 뚜렷해짐에 따라 매도 행위는 전문화되고, 이 전문화에 따른 결과 일부는"교양"또는"문화"라는 표준의 확립으로 나타났고, 일부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 즉"우월한 실재(實在)"또는"우월한 힘"으로서의 새로운 관념으로 발전했다.


 


산업문명의 인간파괴에 저항할 강력한 비판적 지식을 창조하고 온 몸으로 맞장 뜨기를 서슴지 않았던 진보된 인간군이 소위 근대 문명의 지평에 최초로 등장한 지식인이라는 계층이었다.


 


한국의 지식인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계속)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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