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덕분에 형제자매들이 모여 장래 꿈 이야기를 통해 대학교수의 꿈을 키워왔지만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생활하면서 교사로서 꿈을 이어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한국방송통신대학 학사1회로 졸업하고 1969년10월1일 교직에 투신하여 37년간 헌신해 온 신봉초등학교 김춘화(62?사진) 교장의 꿈 이야기다.
다음세대에 태어나도 교직의 걸을 걷겠다는 김 교장은 ‘6학년學’을 정립할 정도로 6학년 담임을 오랫동안 해 왔다고 한다. 6학년은 저학년과는 달리 대화가 잘 통하고 상급학교에 대한 비젼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것은 강한 책임감이 수반돼야 한다. 더불어 따르는 제자들도 당연히 다른 선생님들에 비하면 많다는 것도 6학년 담임만이 느낄 수 있다. 50이 다 된 제자가 동부인하여 찾아 올 때도 있다.
김 교장은 ‘30cm 자’로 통한다.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지 않으면 목표치를 정해 놓고 부족한 점수만큼 손바닥을 ‘30cm 자’로 때려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다. 이처럼 사랑의 매는 허용되어야 한다. 이것마저도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장은 1969년10월1일 전남 신안군 전증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8년 동안 근무한 후 1978년3월1일 전남 신안 쌍룡초등학교에서 4년, 1982년3월1일 전남 신안 압해초등학교에서 1년을 근무한 후 경기도로 발령 받아 1983년 여주 안평초등학교에서 3년, 성남북초등학교에서 5년, 성남단대초등학교에서 3년, 광주도수초등학교에서 5년을 근무한 후 교감으로 승진하여 1999년9월1일 광주초월초등학교에서 3년, 광주산곡초등학교에서 2년을 근무한 후 교장으로 승진하여 2005년3월1일 신봉초등학교로 부임했다.
집안에 우환이 있고 승진에 관심이 없었던 탓에 늦게 승진했지만 신설학교인 신봉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아름다운 학교로 가꿔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김 교장은 ‘정년퇴임’을‘아이들에게 거둘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이라고 정의한다. 아쉬움이 많다.
김 교장이 6학년을 주로 담당하여 특색 있게 교육한 것은‘영어와 한자교육’이다. 영어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계속 공부하기 때문에 영어를 6학년때 집중적으로 교육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는 학생은 없다. 그러나 한자교육은 다르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보람을 느끼고 한자교육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한자교육은 사자성어를 위주로 교육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상급학교 진학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도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본은 역시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고 한다.
늘 감사함을 생활로 ‘부모님께 감사함으로 효도가’‘선생님께 감사하므로 존경이’‘형제자매에 감사함으로 우애가’‘친구에게 감사함으로 신뢰가’‘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축복이’주어지는 것임을 생활신조로 하여 살아온 김교장의 얼굴에서 참 교육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 교장은 안일함 속에는 꿈이 없다고 지적한다. 시각 장애인이면서도 미국 부시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며 유엔 장애인위원회 부위원장인 강영우 박사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불우한 환경과 시각장애라는 신체적 장애를 딛고 일어선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대학생이었다. 그가 연세대학교에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왜 이 대학에 왔느냐는 시험관 질문에 “나는 이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 유학을 가서 석사 박사학위를 따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최초로 시각장애인 대학생이요 최초의 장애인 유학생인 그는 그의 꿈대로 박사가 된 것이다. 세계적인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강영우 박사의 개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장애인들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김 교장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청소년의 범죄와 탈선, 가정파괴와 노숙자 양산, OECD국가 중 자살 1위라는 불명예 이는 모두 꿈이 없는 이유”라고 지적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하자. 꿈을 심어주자. 꿈은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