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계곡을 향해 포천시 이동면 터미널을 지나 도평리를 가다보면 길 옆에 운치 있는 네델란드식 풍차가 보이고 그 위편엔 번듯한 현대식 신축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아서는 멋진 궁전식 호텔 같지만 문 입구에 세워진 입석에는 ‘에덴요양원’이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다.
산새가 수려하고 공기 좋은 포천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노인복지시설 ‘에덴요양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또 어떤 분이 포천에 이런 훌륭한 시설을 세웠을까”궁금해 하기도 했다. 마침 얼마 전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에덴요양원을 방문해 원장을 만나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나누게 되었다. 소외된 어르신들을 정성껏 돌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7월 7일 노인장기요양시설 에덴요양원 서소군(55) 원장과 마주 앉았다.
- 에덴요양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에덴요양원은 2014년 4월25일 노인장기요양시설로 포천시에 등록을 하면서 노인복지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 복지사업을 하게 된 배경은? “저는 8년 전까지만 해도 의정부에서 가사 일을 하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런데 2006년 되던 해, 몸에 심한 통증을 느껴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찾게 됐습니다. 장파열로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에 ‘별탈이야 있을까’ 하고는 별 걱정 없이 의사의 지시에 따라 입원한 저는 너무나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습니다. 직장암 말기라는 사실은 충격적 현실이었습니다.”
- 충격이 적지 않았을텐데요. “초기도 아닌 4기라니 결과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며 살아야할지 도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암 말기의 고통으로 두어 달은 병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우울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저는 늘 긍정적인 사고와 밝은 성격을 지녔지만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한다는 시한부 인생 앞에서는 거울을 들여 볼 때마다 입가의 밝은 미소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 힘든 시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나요?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서 병실생활도 힘들어졌습니다. 병원 원장님은 온 몸에 전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항암치료제도 이젠 잘 듣지 않아서 효과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마지막 안간힘을 내며 버텼습니다.
간병인은 성심을 다해 저의 아픔을 위로해 주었고 늘 좋은 이야기로 제게 웃음을 던져주려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그래 남은 인생이라도 즐겁게 살자’ 혹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흘릴까 염려하는 간병인의 세심한 배려와 친절은 천사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 간병인의 정성으로 저의 입가에는 다시 미소를 띠우게 만들었습니다. 저를 지켜보던 병원의 간호사들은 저의 일상이 말기환자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저는 하루하루를 매우 감사하고 기쁘게 보냈습니다.
간병인의 헌신적인 삶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고 이제부터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과정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경희 사이버대학에 사회복지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 투병생활에도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셨군요. “4년여의 투병생활은 희망으로 가득찬 사회복지사의 꿈과 함께 4번의 큰 수술이 이어졌고 항암치료로 인해 몸은 고통스러웠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문병을 온 이웃들은저의 밝은 표정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돌아갔고 저의 무의식속에 깔려있던 죽음은 이제 저랑 무관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2012년이 되던 해, 4년여의 저의 투병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진단결과 더 이상 전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안도의 소식과 함께 저는 졸업장을 들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2년동안 노인복지시설을 차리기 위해 도심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골을 선택해 공기 좋은 곳을 찾은 결과 이곳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노인요양시설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 설립 배경을 듣고 나니 울컥합니다. 보통 암 말기이면 어렵다고 하는데 기적 같은 일이군요. 투병생활을 극복하신 나름의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투병 기간 동안 오히려 즐겁게 지내냈던 것 같습니다. 나 홀로 이겨야 한다, 나는 살 것이라는 절대적 의지가 있었고 나쁜 생각은 조금도 하질 않았습니다. 몸은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럴수록 기쁜 마음으로 행복하게 지내려 했던 것 같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강북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어르신들을 공기 좋고 깨끗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이제 첫 단추를 잘 꿴 듯 합니다. 제게 늘 세심한 배려로 정성껏 돌봐주었던 간병인처럼 요양시설에 입소하시는 어르신들을 최대한 공경하고 사랑으로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조만간 요양전문병원도 개원해서 어르신들의 불편한 노후생활을 건강에 도움이 되도록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가 힘들 때 도움을 주신 분들의 따뜻한 정성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건강하게 새 삶을 얻었습니다. 육체적 고통으로 힘들어하실 어르신을 사랑으로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서소군 원장은 충북 음성이 고향으로 아들 둘, 딸 넷 중 셋째로 태어났다. 교정직 공무원을 만나 결혼을 한 후 아들 둘을 낳아 의정부에서 평범한 주부 생활을 이어갔다. 행복을 꿈꾸며 살던 2006년 어느 날 직장암 말기라는 믿기지 않는 판정을 받아 4년여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고 죽음과 맞서 싸워야 할 고통스런 시기에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과를 졸업했다. 동시에 말기 암 완치 판정이라는 기적적인 건강의 축복도 얻었다.
서 원장의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는 대한민국 곳곳에서 피해갈 수 없는 운명 앞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많은 암 투병 환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는 같은 처지로 고생을 하는 많은 환자분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제 서 원장은 건강한 모습으로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위치한 에덴요양원에서 지난 날 간병인의 사랑을 되돌려줄 새 어르신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에덴요양원은 1인실, 2인실, 4인실을 비롯해 층마다 예쁘게 꾸며져 있는 넓은 휴게 공간은 정원 77명을 소화해 내기에 넉넉하다. 5층 신축 건물, 전문적으로 잘 갖춰진 내부 시설을 둘러보니 입소하시는 어르신 분들에게는 쾌적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실 것 같다.
사랑받은 경험을 되 돌려주기 위해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된 서 원장의 노인복지에 대한 마인드에 경외감 마저 들었다. 이곳 에덴요양원에서 서 원장과 함께 노후를 기쁘고 행복하게 지내실 어르신들을 상상하니 인터뷰를 마치고 되돌아오는 길이 한결 가볍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