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378-3 일대는 몇몇 공장과 주택이 있는 평범한 풍경을 갖고 있는 동네였다. 그런 풍경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것은 최근의 일이다. 10여 년 전부터 동네에서 자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는 최만석(60) 씨가 흑백의 모노톤으로 자신의 회사의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인데 그림과 함께 쓰인 시는 놀랍게도 최만석씨가 직접 지은 시이다.
“저는 벽화 전문가도 아니고, 시를 잘 쓰는 시인도 아닙니다만, 물질만능의 세태에 사람들이 너무 물질에만 매몰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여백 같은 그림과 시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최 씨의 말을 듣고 보니 쓰여 있는 시들의 시구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과학이 발전하고 물질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돈의 노예로 치닫고 있네요. 도둑질해서 번 돈으로 자식에게 고등교육을 시키면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그 자식은 도둑질은 무의식중에 배웠고 아버지의 거짓으로 사기 치는 법을 배우면서 시대의 가치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동물과 뭐가 다르며 다음 세대에게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최만석의 시, ‘자비, 인륜, 사랑’중에서)
강원도 설악산 인근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 씨는 예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군 제대이후부터 일찌감치 사업을 하게 되었고 당시에는 드물었던 관광지에서 나무를 인두로 태워서 다양한 내용의 시나 그림을 그려 넣은 인두 목공예를 하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 예술적인 감각을 가다듬는데 도움이 되었다.
70년대 누구나 관광지에서 한번쯤은 사왔던 기억이 있는 목공예 제품이 인기를 끌던 초기였고, 이에 더해 설악산에 대한 개발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기에 당시 최 씨는 ‘돈을 쓸어 담는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사업이 잘 되어 나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직원들이 두 명이나 세상을 떠나는 큰 사고를 겪으면서, 최대한의 보상을 해주고 사업을 접었다는 최 씨는 그 일을 통해서 ‘돈이 있다고 다 해결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많은 일이 있었지만 최씨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를 대표해서 일본 전국을 3개월에 걸쳐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등 목공예, 박공예, 낙화, 혁필에 관한 기능을 인정받은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 1999년부터 가산면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터전이 된 가산면에 살게 되면서 내 고장에 어울리는 ‘시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지난 2010년에 ‘우리 사랑하며 살아요...’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한 최 씨는 앞으로 사정이 허락하는 한 뜻을 같이 하는 여러 사람들과 힘을 모아 벽화작업에 일부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
세상이 몰라주고, 사회가 아무리 각박하다고 해도, 지켜야 할 것이 있고 그것을 일깨우는데 그의 시와 벽화가 잠시나마 생각할 여지를 준다면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