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에리히 프롬은 현대산업사회와 기술문명이 가져온 인간관계의 단절 및 자기소외 현상을 심층적으로 보여준다. 프롬은 '건전한 사회'에서 사람은 자기가 계발했지만 자기로부터 소외된 자기 자신의 힘과 대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우상숭배로서의 소외’를 제시하였다. 인간은 자신이 소유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오히려 피창조물인 기계의 소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근대사회는 인간이 창조한 문물과 제도 그리고 각종 생산시설들로 넘쳐난다. 인간의 문물과 제도는 물질적, 기술적, 복지적 혜택을 가져왔지만 우울증과 같은 각종 정신질환자 및 알코올 중독자, 자살자들의 수는 매년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며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프롬은 역설한다.
특히 직장의 보스는 신적일 정도로 거대해 보인다. 대기업의 회장이나 임원에 대해 평사원들이 느끼는 감정은 거의 우상을 숭배하는 현상과 같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프롬은 우상숭배이며 지배와 억압을 당하는 인간은 우상숭배로부터의 소외를 느낀다고 말한다.
소비의 소외
또한 프롬은 '건전한 사회'에서 ‘소비의 소외’를 언급하였다. 프롬이 말한 소비의 소외는 우리가 음식이나 음료수를 마실 때, 우리의 욕구나 희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환상을 향유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 예로, 우리가 아무런 맛도 없고 영양도 없는 빵을 먹는 이유는 우리의 부(富)에 대한 환상과 계층상승에 대한 환상 등이 작용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마시는 것도 음료수가 아니라 음료수 병에 붙은 상표이다.
코카콜라를 마실 때, 우리는 코카콜라를 마시는 광고의 어여쁜 모델의 야릇한 표정과 몸짓과 음성을 마시고 있으며 위대한 미국의 습관을 마시고 있다. 우리의 미각으로 마시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러한 현상은 허구적인 사물의 소비에 이르러서는 더욱 악화된다고 프롬은 본다.
4. 인간소외의 병리적 현상
외모지상주의는 저마다의 개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각자의 성품을 가리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겉모습에 불과한 육체를 위한 정신적 몰두는 자기 스스로의 주체성을 잃고 타인 지향적 삶을 영위하는 공허한 획일화를 야기할 뿐이다.
외모지상주의의 만연으로 형성된 문화는 대중들이 자신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수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억압을 받고, 자신이 쏜 총탄의 파편들이 자신의 몸과 정신을 꿰뚫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또한 인간관계의 단절은 개인에게 침투한 고통을 극복하기 힘들고 삶의 지표를 잃고 방황한다. 단절된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집단화된 가치와 정치·경제가 강고하더라도 개별인간들의 문화적·도덕적 의식이 파괴되므로 뿌리를 잃고 부패하고 만다.
이렇듯 개성이 무시된 외모 중시와 물신주의의 환상적 몰두는 주체성을 잃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자기착취의 결과를 낳게 되며, 이러한 물리적 소유와 의식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태도는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 존엄성에 침해를 가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벽을 놓을 뿐이다.
5. 인간소외 극복방안
사르트르는 인간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존적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은 소유적 삶보다는 정서적 유대의 회복과 존재적 삶이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음미할 가치가 있다.
소외를 단순히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만 찾으려하고 개인과 집단이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다면 인간의 고통은 심화 될 것이다. 파편화되고 원자화 된 현대인의 인간성을 회복하기위해서는 나눔과 배려,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공동체 형성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