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환경의 재앙과 관련하여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UN에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각 나라도 ‘교토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들이 탈퇴와 가입을 번복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국기업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즉, 환경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 때문에 모호한 입장만 되풀이 한다. 환경 기준치에 대한 비용이 제품의 가격에 반영되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 그들 나라의 변명이다.
5. 바람직한 자연관
환경 문제는 전 지구적 문제이며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눈앞의 경고이다. 우리의 땅과 공기를 더럽히고 피폐하게 한 환경오염은 그 자체로 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환경오염은 보이지 않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에 가시적으로 나타나는데 환경이 파괴되고 오염이 되면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지구 환경을 활용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보완하면 된다는 인간중심적인 이분법적 사고관보다는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몸으로 인식하는 생태 주의적 관점을 지녀야 한다.
동물이나 식물이 인간보다 본질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인간도 지구를 형성하는 하나의 종이라는 심려를 염두에 둔다면 지구를 황폐화 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종교계에서는 ‘지구온난화를 초래한 인간의 행위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이다.’라고 규정한다. 자연을 등한시하고 사행산업과 같은 경제적인이익만을 추구하려는 난개발은 환영할 수 없다. 개발을 하더라도 환경을 품에 안고 환경 친화적인 개발이 되어야한다. ‘개발’이라는 단어는 ‘파괴’라는 단어와 상통한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인위적인 개발은 파괴와 맥락을 같이한다.
자손만대가 살아가야할 이 땅의 산과 강과 바다 그리고 공기와 같은 공유재를 파괴할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개발로 인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망상은 환경대학살을 자행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4대강 그리고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같은 국책사업을 시행함에 있어서 장점만을 홍보하여 추진 할 것이 아니라 단점도 제시하여 국민과의 원활한 의사소통 그리고 국민과의 합리적인 합의가 필수적이다. 개발을 하더라도 단순히 일자리를 창출하기위한 토건자본주의적 개발보다는 자연을 보전하는 사업이어야 한다.
바위를 폭파하며 흙을 파내고 메워서, 강과 바다의 물길을 돌리는 개발만이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발상은 망상이다. 그 망상적 DNA를 제거해야한다. 이렇듯 인간의 편의만을 위한 개발을 강행한다면 가공할만한 재난에 직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치인들의 각성 또한 필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위해 시류에 영합하는 패거리적 정치적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를 통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자연을 등한시한 대형 공공프로젝트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보수 언론들의 각성도 요구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숨을 쉬고 자연을 먹고 자연에 기대어 삶을 영위한다. 자연은 곧 우리의 핏줄이며 젖줄이고 몸이다. 그리고 생명의 운동장이며 안식처이다.
세종시가 수도권집중 완화와 국토의 균형적 개발이라면 4대강은 생태적 존재를 규정하는 사업이라고 했을 때, 인간이 몇 백 년 후를 예측할 수 없으므로, 맑은 물이 흐르고 홍수 등 재난 피해를 최소화 하였다고 섣부르게 예단하는 것은 착오적 망상이다. 한국의 전통사상인 홍익인간의 개념이 인간과 자연이 일체화 하는 홍익자연사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학자도 있다.
미래의 인류가 부딪히게 될 가장 큰 시련은 자원의 고갈과 환경파괴에서 오는 문제이므로 자원의 고갈과 파괴로 인한 생물의 멸종은 돌이킬 수 없는 영구적 손실을 가져온다는 사실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자연재해도 얼마나 잘 대비하였느냐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개발을 하더라도 자연재해의 특징과 영향을 사전에 분석해서 그에 적합한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