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 10년이 되던 해인 1919년 3월 1일 일어난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이었으며 3천만 민족의 독립을 바라는 횃불이었으며 큰 외침이었다. 나라를 다시 찾으려는 민족의 독립정신 외에 무슨 다른 3.1정신이 있을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고향 포천에는 또 다른 3.1정신이 있었다는 점에서 포천인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일깨우게 된다는 점을 명심(銘心)할 필요가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북두(北斗)를 바라보며 임금께 절하나…/ 오랑캐 옷자락에 눈물 흘리네/ 만년에 무슨 부귀영화 탐하리오/ 오늘날에 춘추가…/
1906년 1월 1일 내 고향 가채리에서 출생한 면암 최익현 선생이 대마도 유폐지에서 새해 임금을 향한 세배를 드리고 지은 신년 유시(遺詩)의 일부이다. ‘면암 최익현선생과 같은 선비가 조선 반도 땅에 또 한 분만 더 있었어도 나는 조선 땅을 일본에 합병치 못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일합방의 일본측 주역이었던 이등박문이 언급했었다. 우리 이 두 예문(例文)을 통해 포천인의 독립정신을 읽을 수 있다. 다른 고장에도 독립 운동가는 많이 있었으며 또 의사나 열사도 많다. 그러나 최익현선생께서는 행동으로 끝까지 독립정신을 보여 준 최초의 선비였으며 독립운동의 표상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3.1운동 당시 각 학교나 사립학교에서 최익현선생의 독립정신을 본받자는 노래를 지어서 불렀으며 독립의 영정을 불태웠다는 사실이다(포천한영지서원 : 抱川韓英之書院).
일본의 곡식을 먹지 않고/ 의연히 굶어 죽은 최익현의 절개/ 우리는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영웅의 모범’이란 창가집의 가사).
포천의 3.1운동은 최익현선생의 독립정신을 본받아 일어난 특별한 3.1정신이 깃든 독립운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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