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於于野譚)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둘째 아들 수신(守身)은 한때 매우 방탕했던 모양이다. 어떤 기생한테 반해 밤낮 없이 술에 취해 있었다. 하루는 황정승이 점잖게 타일렀다. “요즘 학문을 멀리하고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것 같구나. 그만 자제하거라.”하였는데 그래도 별 효과가 없었다. 수신은 매일같이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비틀거리며 대문을 들어서던 수신은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 오십니까?”대문간에서 황희가 관복을 입고 절을 하며 맞이했다. 수신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이 나라의 영의정이었다. 술이 번쩍 깬 수신은“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황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손님이 오면 주인이 의당 의관을 반듯하게 하고 맞이해야지요”하였다. 수신은“아이구, 자식더러 손님이라니요?” 황희는 아비의 도리로서 방황하는 자식을 타일렀으나 자식이 받아주지 않았다.
“이는 곧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았슴이니 내 마땅히 손님으로 대우할 수밖에...... ”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무릎을 꿇었다.“아버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기방에 가지 않고 술에 취하지도 않겠습니다.”하였다.
그 후 과연 수신은 결심을 하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자식교육에 있어 회초리나 그 어떤 것보다 효과적인 게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훗날 수신은 벼슬에 나가 대를 이어 영의정이 되었다.
대동기문(大東奇聞)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김종서(金宗瑞)는 당시의 유명한 대장군으로서 대호(大虎)라는 별명까지 듣는 사람이었다. 야인을 정벌하여 육진(六鎭)을 개척하고 난 뒤 돌아와서 병조판서가 되어 너무 거만하였다. 하루는 영의정인 황희 앞에서 교의에 기대어 앉은 김종서의 자세가 몹시 삐뚤어져서 보기에 딱하였다. 황희는 시치미를 떼고 하인을 불러“저 병판대감 앉은 교의의 한쪽 다리가 짧은 모양이니 얼른 나무토막을 가져다 괴어 드리도록 해라.”고 명령했다. 아무리 오만한 김종서라고 할지라도 이 날카로운 풍자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뜰로 내려가 흙바닥에 엎드리어 사죄하였다.
후일 김종서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여진을 정벌할 때 화살이 날아와 책상 앞에 꽂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는데 황정승에게 혼이 났을 때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더라 하였다.
하루는 좌의정 맹사성이 황희에게 “영상대감께서는 김종서만 보면 이번뿐만이 아니라 그토록 야멸차게 대하십니까? 혹시 사사로운 감정이라도 있으십니까?” 물었다.
잠시 생각한 황정승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좌상대감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이미 늙은 우리가 물러나고 나면 누가 이 나라 조정을 책임지겠습니까? 바로 김종서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따금씩 혈기를 앞세우고 일을 해내는데 세밀하지 못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를 주의 시키느라 틈이 보일 때마다 꾸짖는 것입니다.”
맹정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과연 영상대감이시오. 참새가 붕새의 뜻을 몰라 잠시 오해했습니다.” 했다. 김종서는 충고를 받아들여 학문에 더욱 열중하고 매사를 신중하게 처리하는 데 주력하였다.
황정승은 집안 아이에서부터 아들과 조정의 대신에 이르기까지 두루 품에 안고 다독이며 올바른 길로 인도했다. 그의 가슴은 왕을 녹이고 신하를 녹이고 백성들도 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