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소띠 해를 맞이하여 올 한해도 황소처럼 믿음직한 황소장세가 올 것을 믿어 봅니다. 한해 농사의 시작인 애벌갈이를 해야 하는 춘분절에 농부의 바쁜 일손이 필요한 계절이 돌아 왔습니다.
공자는《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 것을 익히어 새 것을 알면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남의 스승이 된 사람은 고전(古典)에 대한 박식(博識)만으로는 안 된다. 즉 고전을 연구하여 거기서 현대나 미래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온고이지신하면 옛날 국민교육현장에 한 구절인“조상에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라는 부분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바로 온고를 의미합니다. 제대로 온고 되어야 지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조대왕도 온고를 강조했습니다. 1787년 2월 정조가 신하에게 온고이지신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데 검토관 이유경이 옛글을 익혀서 새 글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정조는 그 신하의 대답을 初學者 수준이라면서 온고지신의 핵심은 온고에 있으며 새것을 끊임없이 배워나기 보다는 내게 의미 있는 것을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을 응축시켜 성찰함으로써 앎의 정도가 더욱 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자부심은 늘 배우기를 좋아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 때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 옛사람들이 남긴 업적을 좋아하고 사모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추구했음을 강조합니다. 바로 온고입니다. 공자는 온고를 바탕으로 문헌만 충실하다면 100년 이후의 일도 알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신(안다라는 뜻보다 깨닫다)을 의미합니다. 그런 공자에 대해 사람들이 평가한 것을 보면 박학할 뿐만 아니라 많은 능력을 지닌 자라고 하였습니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며 돈독하게 실천하는 사람 이것이 바로 중용에 묘사된 공자의 모습으로 온고이지신의 전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옛것을 배우기는 할뿐 깊이 생각하는 과정도 없고 현재의 실천할만한 새로운 것을 도출해 내지 못한다면 고루해지기가 쉽고 또 새로운 것에만 심취하게 되면 경박해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만 집착하거나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제대로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문지학(記問之學=구이지학(口耳之學):피상적인 학문, ※참조 ☞귀로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이야기하는, 조금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학문 )은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不足以爲師矣].”지식을 암기해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은 실로 온고이지신과 표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고전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고전의 현대적 의의를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며 여기에 고전 학습의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記門之學 즉 암기하고 질문에 대답만 하는 학문을 공자는 별로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식의 축적은 되지만 삶의 자양분인 삶을 이루는 그루터기 즉 삶의 줄기가 되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과거의 삶을 익혀서 현재와 미래의 삶을 충실을 기하고 더 나은 삶의 방향키를 잡기 위한 것입니다. 역사를 배우고 옛것을 배워서 오늘의 삶과 역사의 줄기를 잡을 수 없다면 우리는 과거의 과오를 다시 되풀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안타깝게도 계속되는 반복입니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을 다른 무대 위에서 다른 배우에 의해서 반복되는 연극을 보는 거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옛것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성찰을 통해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도출해 내는 것에 더 중요성을 두고 있습니다.
발명이란 것도 현재보다 나은 세계를 추구해내고자 하는 열정으로 인류는 끊임없는 발명을 통해서 상상과 꿈을 현실로 바꾸었습니다. 흔히 발명은 남다른 창의력과 도전정신에 의한 것이라고 여기지만 이 역시 옛것에 대한 축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헤아려 새것이 없다’라는 성서의 말이 아니더라도 옛것을 익혀서 덜어낼 것을 덜어내고 더할 것을 더하며 끊임없이 성찰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여는 것, 이것이 바로 온고이지신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옛것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하고 새것이라고 해서 꼭 새로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옛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은 대립과 단절만을 만들어 낼뿐이다. 구세대와 신세대, 쉰 세대와 낀 세대, X세대와 Y세대라는 표현은 모두 지혜롭지 못한 생각에서 나온 말들입니다.‘올챙이 시절 없는 개구리, 개구리 없는 올챙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반성과 발전의 실마리를 제시해주는 가장 적절한 도구, 즉 온고이지신의 참뜻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