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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에게 듣는다=35]인터뷰 신용철 박사를 만나다

夫婦박사로 中國學의 大家인 신용철 박사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항상 책 속에 둘러쌓여 끊임없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신용철 박사.


중국학(中國學)의 대가(大家)인 신용철 박사를 만나기 위해
경희대학교 경희대박물관을 찾은 그 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포천군 내촌면 음현리에서 태어난 신 박사는 기자를 만난 그 순간부터
포천의 자랑에 대해 끊임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석양의 금수정에서부터 충렬의 마을 상가채, 산정호수, 봉선사와 광릉문화 등
제지가 없었더라면 약속된 인터뷰 시간 내내 포천 이야기가 계속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부의 졸업논문으로 공자속의 공자사상에서 서양에 비해 동양이 근·현대에 뒤떨어졌던 원인을 찾으려는 무모한 시도이후 대학원을 거쳐 독일의 유학 시절 결국 유교문제로
학문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하는 신 박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 박사는 포천의 자랑을 넘어 우리나라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


유학중 ‘한글어린이학교’ 설립… 친목교류의 장 반만년 중국사의 도도한 흐름을 꿰뚫은는 눈은
長江을 굽이치는 물처럼 먼 곳을 바라보았고,
쉬지 않고 축적한 학문은 누구도 멈출 수 없었네.
낱알같은 삶의 세월을 역사의 지혜로 갈무리하였으니
진실을 깨우치는 그 목소리 세기말의 등불이네.


이 시는 『신용철 수상록 하이델베르크의 추억』 책 서문에 실린 『장강을 바라보는 눈』으로 시인이자 고려대 교수인 최동호 님이 신용철(66) 박사의 학문적 깊이를 얼마나 흠모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중국학의 대가인 신용철 박사의 삶을 들여다 보자.
▲그가 살아온 길
1937년 4월 18일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음현리에서 태어난 신용철 박사는 부친 신학현(申學鉉)과 모친 이수호(李秀毫)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자랐다.
1950년 내촌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용산중학교에 입학했으나 6.25로 중퇴하고 광동중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1957년 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모두 도지사상을 수상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보기 드문 천재였다. 1963년 경희대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총장상)하고 이듬해 대학원 사학과(동양사 전공)에 입학한다. 그후 1964년 11월부터 1971년 11월까지 덕성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한다. 같은 해 12월 신용철 박사는 부인인 이광숙(서울대 독어과 교수)씨와 함께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이후 1981년까지 10년동안 하이델베르크 한인교회 설립, 하이델베르크 한글어린이학교 설립,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석사학위 취득,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장학금 수여,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철학박사 학위(중국학, 역사학, 정치학) 취득까지 어렵고 힘든 고난의 시기를 강인한 정신력과 들끓는 조국애로 헤치고 나온다.
당시 신 박사는 한글어린이학교의 교장 겸 국어교사로서 독일어로 한글을 가르쳐야 했다. 그런데 배우는 아이들이 신 박사보다 독일어를 더 잘해서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신 박사는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교재를 만들고 카톨릭 문화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대학의 동양학과에서 한국 문화재에 관한 슬라이드를 빌려 아이들에게 보여 주며 시청각 교육을 시도했다.
또 음악은 ‘애국가’나 ‘아리랑’ 같은 우리나라의 민요들을 자주 들려 주었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아이들과 전혀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수준을 맞추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신 박사의 눈물겨운 조국애와 헌신은 100여리나 떨어진 곳에서도 한글 학교를 찾아오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토요일 오후의 시간에는 부모들이 시장을 보거나 함께 모여 앉아 타향살이의 고달픔과 모국애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신 박사의 애정으로 탄생한 한글학교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친목과 교류의 장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81년 3월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부임 ◁1982년 경기도 정책자문위원 ◁1983~1989년 경희대 대학원 교학부장 ◁1983~1992년 경기도 문화재위원 ◁1983~1987년 한국 동양사학회 간사 ◁1995년 중국 요녕대 학술토론회 참가 ◁1999년 포천문화원-대진대학교 공조학술회의 참석 ◁2000년 제1회 민족발전연구원 공동세미나 ◁2001년 한국-포르투갈 수교 40주년 기념 역사학 세미나 참석 ◁‘2002년 박물관 교육과 독일의 통일’을 주제로 한국박물관학회에서 발표 ◁2002년 정년퇴임, 대통령 표창 ◁2002년~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등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발휘해 국가교육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중국학과의 인연
초등학교 입학전에 천자문 등 기본도서 4권을 통달한 수재였던 신 박사. 신 박사가 중국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렸을 때 집에 책의 앞·뒤장이 모두 떨어진 책이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잘 몰랐지만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책이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중에서 재미있는 부분만 발췌해서 엮은 조선사화집(이은상 번역)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것이 아마 중국학과의 첫 만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어렸을 때 읽었던 조선사회집의 내용을 줄줄 욀 정도입니다”
포천 산골에 학교 교과서외에 읽을거리가 없던 시절 이 책은 신 박사가 읽은 최초의 교양서인 동시에 역사책이었던 것이다.


국내 14명뿐인 국사편찬위원 중 한명
수필가, 방송작가 등 이색경력 소유자


▲그의 가족이야기
부부가 모두 박사로 신 박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등록금이란 모르고 살았다. 서울대에서 독어과 교수로 후진 양성에 온 정열을 쏟고 있는 부인 이광숙 박사도 매한가지다. 부부는 함께 독일 유학길에 오른 뒤 신 박사는 동양학을, 이 박사는 독일학을 전공한다.
신 박사는 독일 유학 10년동안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은 어머니 이수호씨의 병원비에 보태는 등 정작 본인은 어렵고 궁핍한 생활을 했지만 효심을 잃지 않은 자랑스런 아들이었다.
신 박사 이야기를 잠깐 벗어나서 부인 이야기를 해 보면 이 박사는 독일에서 유학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독일현지 교사 자격증, 독일문화 교사 자격증, 독일 언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밑바닥 과정을 거쳤다. 독일사람보다 더 독일사람답게 유창한 현지어를 구사하는 능력은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부부사이에는 두 딸(동미, 소미)을 낳게 된다.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처럼 동미양은 서울대에서 영문과 석사과정을 밝고 있고 소미양도 서울대 사범대 영문과 2학년에 재학중이다.


▲포천을 사랑하는 마음
1997년 포천군 군지편찬위원 및 향토문화보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포천의 묻혀있던 수많은 문화재를 발굴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도 항상 포천의 흙내음을 그리워하던 신 박사는 포천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최근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예비전』 23호(2003년 5~6월호)에 봉래 양사언 선생에 관한 특집을 다루었는가 하면 자신의 책 『신용철 수상록 하이델베르크의 추억』에 1장을 마련, 30여 페이지 넘게 고향 산제터부터 금수정, 상가채, 산정호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틈날 때마다 고향 포천을 찾아 숨은 문화재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이색 경력의 소유자
신용철 박사는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했다. 앞서도 밝혔듯이 지난 2000년부터 월간 『문예비전』의 편집위원 및 문비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 박사는 평소 글을 쉽고, 재밌고, 짧게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 박사는 “수년천을 도도히 흘러오는 역사의 대화 속에서 남의 삶을 바라보며 될수록 객관적으로 고증하고 평가하다 보면 내 삶에 대한 조명을 희구하게 되는 때도 있다. 그것은 남을 벌거벗겨 그들의 실체와 모습을 보는 역사학도로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벗겨보고 싶은 욕심이 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벌거벗긴 채 대중 앞에 내놓는 부끄러움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 부끄러움이 작아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내 속에 있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서이다”라며 그의 작가관을 피력한다.
지난 1998년 IMF로 시름을 앓던 때에는 SBS 다큐멘터리 부문에 응시, 『역사의 뿌리-사고(史庫)를 찾아서』로 우수상을 수상해 방송작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또 올 3월부터는 가평군 조종암 보존회 회장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포천 발전을 위한 한 마디
포천발전을 위해 한마디를 부탁하는 기자의 물음에 신 박사는 뜬금없이 “높은 산에 올라가야 형체를 잘 볼 수 있습니다. 또 낮은 곳에서는 잘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신 박사의 해석은 이렇다. 높은 곳과 낮은 곳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기만큼 소중한 남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을 주문한다.
또한 신 박사는 “흙을 사랑하는 게 나라사랑이라면 문화사랑이 곧 지역사랑”이라는 말로 우리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주요저서
『이탁오의 사회비평』(독문) 『세계의 역사와 문화』(1985. 서울, 탐구당) 『동양의 역사와 문화』(1993. 서울, 탐구당) 『통일시대의 민주 시민 교육론』(1997. 서울, 탐구당) 『홍콩은 어디로 가는가』(1997. 서울, 우석출판사) 『역사를 속이면 역사에 속는다』(2001. 서울, 우석출판사) 『운허 스님의 크신 발자취』(2002. 서울, 동국역경원)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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