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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석 박사 |
통일 이후 대비 토지소유권 정리문제 연구키로 결심
통일 한국의 북한 토지소유권 정리방안에 관한 연구로 미래 한국 지정학적 지표를 제시한 서희석(徐熙錫) 박사. 포천군 소흘읍 이곡리 326번지 서 박사의 현 주소지에 가보면 그의 인생만큼이나 검소하면서도 예술성 높은 조각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포천출신으로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직자들의 친목모임인 사우회의 수석부회장으로 포천을 향한 애향심에 바쁜 일과가 끝나고 편히 쉴 수 있는 꿈속에서 매일같이 포천의 정든 거리를 거닌다는 서 박사. 그래서 서 박사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지적행정에 관련된 부분에서만큼은 포천군 행정에도 일조하고 있다. 또 금강산을 왜 동해에서 장진항으로 가냐며 수도 서울에서 포천을 거쳐 금강산으로 가야한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서 박사의 애향심은 남다르다. 땀흘리며 일하는 만학도에서 이제는 국내 최고의 지적행정전문가로 살아가고 있는 서 박사의 인생을 들여다 보자. 서희석 박사를 만나다
빗물이 강에 떨어지면 빗물 빗물이 바다에 떨어지면 바닷물 떨어진 곳은 달라도 갈 곳은 한 곳 바다 그 물 틈새의 낀 돌은 이끼 끼고 썩어가지만 구르고 굴러 다져진 돌은 아낌받는 수석되어 사랑을 받네
이 시는 포천 출신 서희석 서울특별시청 지적과장(행정 서기관. 행정학 박사. 상명대 정치경영대학원 겸임교수)이 지은 ‘물과 돌’이란 시다. 물과 돌의 관계를 인간과 세파와 시류로 조화있게 노래한 시율로 마치 서희석 박사의 생애를 작시한 듯 그 의미와 시적 미학의 승화를 느낀다. 서희석 박사는 1947년 7월 8일 포천군 포천읍 신읍리 189번지 서거복(徐巨福)씨의 10남매(아들 다섯, 딸 다섯)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포천초등학교(47회), 포천중학교를 졸업(1963년 3월 8일)하고 1968년 포천군청 재무과(당시 21세), 서울시 중구청 세무1과(1971년) 등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보다더 더 어렵다는 국가기술사(지적기사 1급) 자격을 획득(1977년 2월 10일), 그해 서울시 우수공무원 표창을 수상하고 서울시 도시계획국 구획정리과(1977년 7월 1일)로 영전, 본격적으로 수도 서울 지적행정가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학문의 길과 행정관료의 길을 함께 가는 어려운 길을, 흐르는 물의 돌이 다듬어지고 다져지듯 서 박사는 만학의 꿈을 펼치며 땀을 흘리게 된다. 용산고등학교, 성결대학교, 경희대 행정대학원(석사과정?박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이루어 마침내 바라던 박사학위를 획득했으며 학생회장, 원우회장은 늘 서 박사 몫이었고 늘 ‘땀 흘리며 일하고 공부하는 만학도’의 모범을 보였다고 서박사의 동창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국가기술자격 1급이면 박사학위 못지 않는 대우이지만 공부하고 연구하는 공무원의 자세로 땀흘려 일하고 밤 세워 공부하는 어려운 가시밭 길을 기쁜 마음으로 걸어 온 서 박사였다. 그동안 정부로부터 모범공무원(총리 훈격) 표창을 받았고 이에 힙입어 서초구청 지적과장(1988년), 종로구청 지적과장(1991년) 등을 거쳐 1997년에는 모범공무원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된다. 1999년 8월 30일 경희대로부터 행정학박사(통일한국의 북한 토지소유권 정리방안에 관한 연구) 학위를 받게 되자 정부는 그해 11월 23일자로 수도 서울의 지적관리 업무의 총수인 서울시청 지적과장으로 영전, 발령케 한다. 땀흘려 일하고 밤 세워 공부하는 공무원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영광이라고 하기에는 그 노력이 컸다(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독일 옛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에서 통일 한국의 토지 소유권 정리 문제를 연구하겠다고 결심한 서희석 박사 공무원들의 해외 여행이 관광여행이라며 비난받던 시절 서 박사는 독일의 옛 동·서독 분단의 현장이자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현장에서 서독의 분단 이전의 소유권자에게 토지를 몰수당하고 신음하는 동독의 소유자들의 비애를 보고 “내 조국 대한민국의 통일 후의 토지문제를 연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다시 이런 서 박사의 모습을 보노라면 다시 태어나도 한국의 토지정책의 행정가로 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직단(社稷壇… 사(社)는 토신(土神), 직(稷)은 곡신(穀神)) 사직대제(社稷大祭)의 아헌관(亞獻官)으로 제관을 한 서 박사 대한민국 국권 이전 조선조의 나라의 신을 모시고 제를 올리는 서울 사직공원 안에 있는 ‘사직단’에서 땅을 관리하는 지적관리의 총수로서 대제의 아헌관으로 참석했던 일을 잊지 못하는 서 박사다. 서 박사가 얼마나 국토를 사랑하고 국민을 존경어린 마음으로 섬기며 지적행정 총수로서 수도 서울의 지적행정을 관리·지휘하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어서 존경이 앞섰다.
땀흘리며 일하는 만학도에서 국내 최고 지적행정전문가로
▲수도 서울의 포천출신 공무원의 친목모임인 사우회(士友會)의 리더(수석부회장)로 활약 조관형(現 한국보험계리인회장)씨가 주관하고 있는 사우회(士友會)의 수석부회장(회장이 공석으로 실질적 회장 대행)으로 서울 시내 재경 공직자의 모임을 이끌고 있다. 또 서울시 지적행정 시행자료의 포천군청 제공 등 고향 행정 시스템에도 기여하고 있다. 서 박사는 앞으로 중앙부처 공무원과 수도 서울에 재직하고 있는 포천 출신 공무원들의 연계와 통합 그리고 친목교류를 위해 헌신·봉사할 것을 구상하고 있었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서 박사는 종로구청 지적과장 당시 포천군(당시 이진호 군수)의 수해 복구 지원금을 들고 부녀회원들과 함께 한걸음에 달려오기도 했다. 또 문화원과 사우회의 연계지원 사업으로 농어촌 도서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던 일을 기억하는 포천인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포천군 소흘읍 이곡리 326번지가 서희석 박사의 현주소다. 산곡간에 흐르는 맑은 냇가에 두릅나무로 울타리섶을 만들고 두충나무 병풍을 하는가 하면 김광우(조각가. 동아대 교수), 연재동(조각가. 포천출신 작가) 등 현역 유명 조각가들의 생동하는 듯한 조각품들이 연못가를 장식하고 있었다. 검소하면서도 예술성 높은 작품을 보면서 ‘고향 사랑의 무릉도원(武陵桃園)이 이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향의 흙내음을 맡으며 고추 따고 감자 심으며 찔레꽃 향기 맡다가 8시면 시청으로 출근하는 서 박사의 정렬은 식지 않는 용광로다.
▲서울시정의 토지부동산 행정체제의 구축사업 보고회 주재 수도 서울의 부동산 정보 전산체제 구축은 정말 ‘국토의 핵심인 수도 서울인 관계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서 박사다.
▲포천의 발전 전략 - 도농복합시로 통일조국의 핵심이자 중심도시 “금강산을 왜 동해에서 장진항으로 가야 합니까? 수도 서울에서 포천을 거쳐 금강산을 가야하지 않습니까?” 옳은 말이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지정학적 연구, 지방행정의 역할 증대를 통해 고향 포천이 금강산 가는 길의 지름길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국 최초의 통일대비 지정학 연구 서 박사는 1999년 7월 12일자 조선일보 김성연 기자와의 대담에서 통일조국의 토지소유권 문제를 학문적 깊이와 미래지향적 연구결과로 피력하여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과 환영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당시만 해도 6.15 공동선언 이후 통일을 대비한 지정학적 연구가 요구되던 시기여서 많은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사회복지 연구와 봉사 서 박사는 1987년 홀트아동복지타운 평생회원으로 가입, 자선기금을 헌납하고 있으며 (사)한국지역복지정책학회 감사와 (사)한국지역복지봉사회 이사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봉급을 쪼개어 기금을 헌납하고 있다.
▲학문의 길과 사회참여 행정의 길 현 상명대 정치경영대학원 겸임교수(퇴직시는 정교수로 내정)로 출강하고 있으며 국가기술사 자격검정 출제위원(2000년 이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출제위원(2001년 이후), 한국지적 100년사 편찬위원,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겸임교수(2003년 3월 2일)로 출강하는 등 서 박사의 학문의 길은 끝이 없이 불타는 정렬의 길임을 알 수 있다. 전국 시·도 지적행정책임자(지적과장 회의)들의 회장으로 전국 지적행정의 선도자 역할도 다하고 있다.
▲포천인의 긍지와 봉사적 자세 가난했던 옛 포천의 과거를 생각하면 감회를 느낀다고 말하는 서 박사. 그래서 포천군 행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정정보는 빼놓지 않고 제공하고 싶은 게 소망이라는 서 박사다. 계획된 미래지향적 도농복합시 포천의 발전적 모델을 구상하고 있는듯 했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는 서 박사는 무슨 일이든지 포천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언제나 발벗고 달려 갈 준비가 되어 있는듯 했다.
▲존경하는 인물과 강인함의 조건 서 박사는 ‘한국의 지적사’를 편찬한 고 원명희 선생의 학문적 연구를 존경하고 있다. 서 박사의 한국 지정학 연구에 크게 영향을 미친듯 했다. 또 할머니, 어머니의 의지력과 생활력이 오늘의 서 박사를 있게 했다고 말한다. 고아들과 월남 피난민의 자녀들을 모아 가르치던 숙부 서영복씨의 정신적 영향도 컸다고 한다. 또 평소 쌓은 무술인의 실력(국선도 4단. 2002년 11월 9일)의 강인한 체력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진취정신, 정력의 원천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획/김창종 본지 자문위원(수필가) 정리/박노창 기자 pnct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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