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최종규 포천향교 전교 |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포천향교 최종규 전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우리의 뿌리가 유교라고 생각하는 최 전교는 시대마다 해석은 변할 수 있지만 유교의 근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 효의 연장으로 제사를 모시고, 대를 이어 자식들을 훌륭하게 잘 키워 이 나라에 큰 일꾼이 되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최 전교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렇게 강조한다.
명종3년 창건이래 수많은 明賢 배출의 산실
현대사회의 대안교육기관 정착에 ‘비지땀’
Q.포천향교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본 향교는 고려 명종(明宗) 3년인 서기 1173년에 창건하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 선성현(先聖賢)의 덕풍(德風)을 숭모(崇慕)하고 유학을 연구 강론하는 지방교육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 왔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된 것을 1594년에 중건하였으며 그 후 수시로 중수(重修)와 보수(補修)를 가하여 수호(守護) 관리(管理)하여 오다가 1950년 6.25전란으로 인하여 파괴되었습니다.
이에 포천유림들은 즉시 중수공사계획을 수립하여 1962년에 교궁(校宮)을 중수(重修)하였고 1984년에 국고보조금(國庫補助金)과 지방비(地方費), 유림성금(儒林誠金) 등으로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을 해제보수하여 대지 583평 위에 총 건평 49여평의 건물 규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88년 도비와 군비 1천580만원으로 담장 109m를 보수하고 이어서 1996년 군비 1천980만원으로 담장 설치, 주차장 포장과 홍살문을 새로 건립하였습니다.
본 향교가 위치하고 있는 이 곳 포천은 본래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 일명 명지(命旨)인데 신라때 견성군(堅城郡)으로, 고려 초기에 포천으로 개칭하였으며 995년(성종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에 파(罷)하였습니다. 그리고 1018년에 포천을 양주에 예속시켰고 명종때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413년에 현감(縣監)으로 고쳤습니다.
그 후 1618년에 영평(永平)과 합병하였다가 1623년에 분리 복구하였고 1895년에 포천군이 되었으며 1914년 지방행정구역개편에 의해 영평군을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본 향교에서는 대성전(大成殿)에 오성(五星)과 송조(宋朝) 4현(賢) 그리고 우리나라 신라때 2현(賢)과 고려때 2현(賢), 조선조 14현(賢)모두 18현(賢)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매년 음력 2월, 8월 초정(初丁)에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奉行)합니다.
<포천향교 창건 및 재건>
1173년(고려 명종 3) 창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
1594년(선조 27) 중건(重建).
1916년 중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파손.
1962년 교궁(校宮) 중수(重修).
1984년 대성전과 명륜당 중건.
선현의 업적 기리고 유덕 선양
‘고유 민풍’ ‘예속’ 순화 노력
Q.오늘날의 향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향교하면 제사나 지내는 단체쯤으로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교육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육기관으로서 향교가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학교교육에서는 충효나 예절교육 같은 인성교육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교과교육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인성교육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향교에서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옛날부터 웃어른에 대한 공경과, 효, 예 등의 교육에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오늘날 이처럼 혼탁한 사회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학교밖에서의 교육 특히 예절 교육이 매우 중요합니다. 산정호수 근처에 경기도 예절교육원이 있습니다만 사실 경기도 예절교육원은 포천의 예절교육원으로 구상했던 것인데 경기도에게 빼앗긴 것이죠. 폐교된 학교를 이용해 포천군민을 위한 예절교육원을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Q.포천향교의 조직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향교는 각 면에 1~2인의 장의가 있습니다. 회사로 따지면 이사격인 장의는 향교의 재산 관리 등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포천향교는 16명의 장의와 감사2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림의 모임체인 유도회는 유도회 포천군지부 밑에 여성유도회, 청년유도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학생유도회는 아직 없습니다. 청년유도회에서는 고전연구회를 조직, 10여년간 한문학을 교육해 왔습니다. 또한 청년유도회에서는 관례와 계례라는 성년의례를 주관합니다.
관례와 계례란 소년 소녀가 성장한 어른으로 진입하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는 통과의례로 관례는 남자의 땋아내렸던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어른의 평상복을 입히고 관(복건, 초립, 사모, 탕건, 등의 갓)을 씌우고 술 마시는 예법을 가르치며 별호를 지어주는 의례로 남자 나이 15세에서 20세 사이에 행하는 것입니다.
계례는 여자에게 비녀를 찌르게 하는 의례로 비교적 간단한 절차입니다. 처녀나 총각은 머리를 땋아서 늘어뜨리고 다니다가 관례와 계례를 치를 때 머리를 걷어서 얹었습니다. 여성 유림들로 구성된 여성유도회에서는 다도교육 및 다도 시연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Q.포천향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전통이 깊은 포천향교는 6.25사변으로 옛날의 문서들이 불타버려, 역사적 고증이 힘듭니다. 따라서 여태껏 향교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가 광복이후 사료만이라도 정리하자는 의미에서 작년에 향교지를 만들었습니다.
포천향교를 거처간 많은 명현들이 있음에도 이들의 기록이 하나도 없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Q.포천향교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요?
-유교의 성인(聖人)인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의 유지관리를 하며, 사회 교화사업 및 선행자 표창, 사문진작 및 윤리사회 구현을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Q.포천향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교화사업이나 교육프로그램에 대해 밝혀 주십시오.
=포천관내에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충(忠) 효(孝) 예(禮)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범죄가 증가하고 사회가 혼탁해지는 등 그 모든 것은 우리사회에서 ‘예(禮)’가 사라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미약할 수밖에 없는 예절 교육등 소양교육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Q.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경제적으로는 잘 살게 되었지만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진 외래 문명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절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법이 있어도 지킬 줄 모르고 양심이 있어도 거느릴 줄 모르며 선량한 사람은 바보가 되고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사회, 제자가 선생을 때리고 선생이 제자를 두려워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회에서 하루속히 벗어나려면 우리 민족의 전통예절을 되살려 실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Q.전교님께서는 예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셨는데요. 예는 무엇입니까? 우리사회는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예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예절은 위아래가 없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이 있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켜야할 예절이 반드시 있습니다. 예절은 더불어 지켜야 할 상호간의 것입니다.
Q.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유교가 현대 사회와는 궁합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시대에도 유의미한 유교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의 뿌리가 유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대마다 해석은 변할 수 있지만, 유교의 근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유교가 지향하는 바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 효의 연장으로 제사를 모시고, 대를 이어 자식들을 훌륭하게 잘 키워 이 나라에 큰 일꾼이 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