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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이원규 전 임업 연구관을 만나다

국내 임산버섯 연구의 ‘선구자’ 이원규 연구관
박노창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황무지와 같았던 버섯재배산업에 터를 닦아 놓은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 버섯연구실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임산버섯 재배기술 향상과 품종 개발, 품종 등록제 확립, 규범 적립 등 우리나라 임업 발전에 많은 업적을 이룬 이원규 연구관이 바로 그다.
이 연구관은 버섯 개발뿐 아니라 국유림보호, 조림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임업발전에 이바지했다. 임업 연구관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노라 자부하는 이원규 연구관.
퇴임 후 노모가 살고 계신 포천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 보았다.


▲이원규 연구관이 걸어온 길
1938년 포천시 신읍동에서 태어난 이원규 연구관은 1963년 임업시험장 보호과에서 근무를 시작해 우리나라 임산 버섯 연구를 비롯 국유림보호, 조림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임업발전과 산지자원화를 위해 투철한 사명감과 성실한 직무수행으로 많은 업적을 이룩했다.
이 연구관은 임산 버섯 연구의 실질적인 선구자다. 우리나라 버섯 연구는 1982년 버섯연구실이 개관하기 전까지 임업연구원에서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버섯연구실 개관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담당연구관으로 이원규 연구관이 부임하면서 임산 버섯 개발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뤄졌다.
또한 1996년 1월부터 1997년 6월까지 산림미생물과장으로 재임하면서 표고, 송이 등 임산버섯의 재배기술 향상과 품종 개발 및 새로운 기자재 개발 연구에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특히 표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표고 톱밥재배 기술을 개발했으며 원목재배에 있어서도 1998년 새로운 표고재배시설 모델 5종의 개발과 기계화 연구에 큰 공헌을 했다.
이 연구관은 진작부터 표고 신품종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본, 중국 등으로부터 200여종의 표고 균주를 수집하는 등 표고 유전자원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이같이 수집한 유전자원을 교잡 이용해 8종의 새로운 표고 품종을 개발함으로써 농ㆍ산촌 소득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표고 재배가 일본과 비견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선진 기술을 갖게 되고 표고 재배자들이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과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이 연구관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이 노력한 결과다.
이 연구관은 임산버섯 연구 이외에도 많은 공적이 있다. 1970년대 서울영림서 산하 홍천관리소에 창촌보호구 주임으로 근무할 당시 국유림 도벌 피해가 극심했었다. 이 때 이 연구관은 도벌자를 색출해 사법처리 함으로써 외부의 압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원칙대로 처리해 국유림 보호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1974년부터 76년 2년 동안 임업시험장 진해지부에 근무하면서 묘목운반을 위해 미군의 치누크헬기를 동원하는 등 적극적이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불모산에 연간 350ha의 엄청난 면적을 조림하면서 군항림 조성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도 했다. 오늘날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진해 군항림과 마진도로 부근의 벚나무, 삼나무, 편백은 바로 이 때 이 연구관이 직접 심고 가꿔 이룩한 공로다. 또 남해안과 제주도를 수차례 답사하면서 열대수를 수집해 거재군 저도지역에 대면적 열대수 조경단지를 조성함으로써 열대수종 조경의 효시를 마련했으며 저도지역 소나무림 수하에 목초지를 조성해 우리나라 최초로 임간 목초지 조성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런 공로로 당시 해군통제부 사령관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36년간 임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그의 공적이 인정돼 1999년 정년퇴임과 함께 그는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포천에서의 유년시절


6.25동란을 겪은 세대는 유년시절이 그리 유쾌하지 만은 않다. 이원규 연구관 역시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6.25전쟁 때 피난 떠났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단다. 전쟁 발발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이 연구관은 포 소리를 천둥소리로 착각했었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채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솥을 짊어지고 피난을 떠났던 기억이 선하다”며 그 당시를 회고하는 이 연구관. 남양주 진접으로 피난했다가 포천으로 다시 돌아와 인민군 치하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는 그. 그 때 인민군에게 배운 인민군 노래를 아직도 기억한단다. 그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한강은 넘을 때였다.
“얼어붙은 한강을 넘다가 수천, 수만명이 한꺼번에 한강으로 몰려들어 얼음이 깨져 처참히 죽어가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며 처참했던 그 당시를 떠올렸다.
이 연구관은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향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쳤다. 전쟁으로 학교가 폐허가 되어 학생들이 흙벽돌을 만들어 나르며 학교를 짓기도 했다. 그렇게 사회적 환경이 힘든 유년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 포천의 맑은 산천은 어린 소년이 꿈을 키우기에 충분했다고 이 연구관은 말했다.










▲포천의 버섯과 임업 현황


=포천시는 느타리버섯 재배에 알맞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연평균 기온이 낮고 서리 내리는 날이 많아 수확과 유지에도 탁월하다. 재배사가 산간지역에 있어 여름재배도 용이하다. 포천에서 생산되는 느타리버섯이 경기도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또한 서울 인근 지역으로 연중 신선한 버섯의 출하가 가능해 시장성이 좋은 여건이다.
반면 포천에는 잣나무가 많은데 잣은 수익성이 적다. 버섯산업에 중점적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유리온실을 많이 지어 버섯재배에 더욱 박차를 가했으면 한다.









 


▲포천발전을 위한 제언 =
얼마 전 중국 칭따오를 다녀왔는데 맥주 축제를 성대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내 고향 포천의 이동막걸리가 생각났다. 이동막걸리는 포천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어설프게 막걸리축제하지 말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성대하게 개최했으면 한다. 포천이 시로 승격하면서 발전은 하고 있지만 아직 너무나 낙후된 지역이다. 이제는 포천 주민들의 의식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또한 집이나 건물이 지어지면 인도가 없다. 도로 옆으로 바로 건물이 있어 너무나 위험하고 미관상 보기가 싫다. 계획에 의한 아름다운 도로가 건설되길 바란다.








 


▲포천신문에 당부 말씀
=포천 사회의 문제점을 심층 취재해 여론을 주도하고 포천 발전에 지향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번 취재하고 기사화 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끈질긴 관심을 갖고 보도했을 때 신문이 사회적인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포천신문이 포천을 선진사회로 이끌어주기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
=산림청에서 하는 용역사업이나 버섯관련 일반기업 연구소 등에서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어디에 귀속되어 얽매이고 싶지 않다. 자유롭게 여행다니면서 노년을 보낼 생각이다. 포천 버섯재배 농가에서 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기술지도 특강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보고 있다.


 

박노창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4년 04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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